기사 (8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여울, 장금소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여울, 장금소여울 안남면 쪽에서 보자니 금강을 따라 거쳐간 마을이 꽤 여러 곳입니다. 동이면 우산리로부터 청성면 고당리, 합금리를 지나 안남면 지수리, 종미리 미산과 종배를 지나왔습니다. 금강소수력발전소 바로 아래 우산리 지매골여울로부터 한쪽은 동이면·청성면·안남면 등 3개 면을 거치지만 강 건너편 강물이 휘도는 안쪽은 여전히 동이면입니다. 동이면 조령리에서 청마리, 딱 두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10-28 00:00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안남면 종미리 미산 도태골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안남면 종미리 미산 도태골여울 금강은 흘러 이제 안남입니다. 지난달 갔었던 옆쪽골여울 하류로 안남면 종미리에 이르기까지 네 개의 여울이 있습니다. 이중 강의 한가운데에 작은 모래섬이 있는 곳의 집게여울을 제외하고는 안남면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길이었습니다. 집게여울은 물론 가덕리 아랫청동 사람들이 농경지를 통행하기 위해 주로 건너 다녔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울지기인 향토사가 정수병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08-05 00:00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가덕리 쇠보루여울·옆쪽골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가덕리 쇠보루여울·옆쪽골여울 겨울에는 강자갈이 발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던 곳, 여름엔 살을 놓아 물고기를 잡고, 물길을 돌려 물레방아를 돌렸던 기억이 있는 곳이 여울이었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건너다녀야 했다. 조금이라도 가고자 하는 곳까지 걸어가는 거리를 짧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여울을 건넜다.여울은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두는 길이었다.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07-01 00:00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가덕리 더디기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가덕리 더디기여울 어신여울과 신달여울을 거친 금강물은 이곳 더디기여울에서 가덕리 사람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여울은 우리 서민들의 가장 큰 교통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가 움직일 수 없을 때 서민들의 통행로가 되었습니다.더디기여울을 건넌 사람들은 주로 가덕리 더디기마을 사람들입니다. 더디기여울은 지금 휴일에는 행락객들과 낚시꾼들이 몰리는 자연발생 유원지로 변했습니다. 여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06-03 00:00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청성면 합금리 어신여울·신달여울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청성면 합금리 어신여울·신달여울 “형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그러게. 잘 지냈나?”청성면 합금리 하금 마을과 동이면 가덕리 마을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반가운 마음이 묻어난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두 사람. 도로를 따라서는 아마도 2km 가까운 넘는 길을 가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의 여울을 따라 온 여울지기 정수병(동이면 용죽리)씨도 이 곳이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05-13 00:00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마티리 '말여울' ② [정수병과 함께 여울을 건너다] 동이면 마티리 '말여울' ② ◆정립 선생 애국혼 서린 빈 절터와 산등성이 논 흔적 아직도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동이면 조령리에서 금암리로 가는 길을 닦느라고 깎아낸 절벽으로 올라야 한단다. 지그재그로 닦여진 길. 낙엽이 쌓여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우리가 지금 오르고 있는 길은 청마리 말티 앞 말여울을 건너 올라오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예부터 목쇠(목시)벼랑이라고 불렀던 길. 험 문화연재 | 이안재 기자 | 2005-04-15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