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삶의 기쁨을 안겨주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옥천이 그런 곳이었다. 비로소 숨 쉴 틈이 생겼던 걸까. 얼굴빛에 밝고 편안한 기운이 전해졌다. 옥천에 머무르자 삶이 여유로워지고 시야는 더 넓어졌다. 옥천서 만난 물과 바람이, 풀과 구름이, 일출과 석양의 장관이 그를 행복하게 했는지 모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평온함이 찾아오는 옥천에 매료돼 있었다. 예술의 깊이는 점점 무르익어갔다.‘천연염색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는 어쩐지 부족한 감이 있다. 천연염료가 되는 식물을 옥천서 채취하거나 직접 재배해 색을 만든다고 하니 지난한 과정을 떠올리면 설명이 아쉬울 법도 하다. 자연에서 채취한 나무껍질, 꽃, 풀, 열매가 작품 재료가 됐다. 작품 하나하나가 옥천이 스며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위적인 화학염료로 표현해낼 수 없는, 자연을 닮은 싱그러운 천연 빛깔을 만들어 내려고 1년 내내 부단히 움직였다.전통기법으로 다양한 색을 물들인 한지를 손으로 한 땀 한 땀 자르고 붙여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를 작품 38점으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한지에 천연염색 콜라주 기법, 여기에 백토가 가미됐다. 작가노트에 ‘달을 닮은 듯 둥그런 달항아리 곡선이 자연에서 보는 비정형의 미(美)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나왔다. 옥천에 정착한 지 5년 된 김보영(39, 읍 가화리) 작가가 지난 11월29일부터 12월10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작품 전시를 했다. 주제는 ‘달을 담다_옥천’.김보영 작가의 '달을 담다_옥천' 전시회가 지난 11월29일~12월10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열렸다. 전시실에 조선시대 백자 중 하나인 '달항아리'를 표현한 작품 38점이 걸렸다. 이 작품들은 천연염색한 한지를 콜라주 기법으로 이어 붙였고, 배경에 도자기 만들 때 쓰는 백토를 발랐다.■ 출근길에 마주친 옥천 풍경“‘달을 담다’에 달은 자연을 말해요. 달항아리 안에 자연의 이미지를 보일 듯 말 듯 담고 싶었고요. 어떤 작품에는 달항아리 안에 대청호 풍경을 넣었어요. 매일 아침 신랑이랑 읍내에서 안남에 출근할 때마다 대청호를 만나거든요.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작가의 삶도 작업에 녹아난다고 봐요. 옥천에 정착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일상을 기록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 삶과 자연의 형상을 달항아리 안에 담아봤어요.”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김보영 작가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버지를 따라 미술을 곧잘 했다. 자연스레 그림을 전공으로 삼아 동덕여대 회화과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했다. 동 대학원 석사 졸업, 박사 수료까지 마친 그는 지금까지 개인전 10회, 단체전 27회, 아트페어 6회 등에 참여했다. 옥천에서는 이번이 첫 전시다. 천연염료를 직접 채취하고, 염색한 한지를 붙여 작품을 만드는 게 회화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사례라고 한다.학부 1학년 때 천연염색 동아리에 들어간 게 계기였다. 2009년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천연염색지도사 자격증까지 딴 그는 2010년부터 본격적인 염색 작업에 나섰다. 석사과정 당시 석사청구전 주제를 천연염색으로 잡고 2010년 동덕아트갤러리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달항아리 시리즈는 2014년부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연과 전통’이라는 작업관을 달항아리에 담았다. 박사청구전까지 마친 그는 2018년 옥천에 들어왔다.김보영 작가가 옥천 대청호 풍경을 그린 달항아리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옥천에 5년 전 정착한 김 작가는 축사를 관리하는 남편과 함께 안남면 화학리에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안남에 천연염료로 쓸 수 있는 여러 식물을 채취하거나 쪽을 직접 재배해 전시 작품에 활용했다.'달을 담다_옥천' 전시 메인 작품. 달항아리 안에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대청호 풍경을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해와 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소밥 주고, 식물도 키우고“제가 옥천에 오기 1년 전에 신랑이 먼저 와 있었어요. 안남면 화학리에 소를 키우거든요. 저도 매일 같이 가서 소밥 주고요. 거기서 염색 작업을 했어요. 한지 붙이는 작업은 집에서 하고, 야외 염색활동은 안남에서 했는데요. 실은 이 활동 자체가 신랑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했어요. 올해는 천연염색에 관심 있는 지인들이랑 염료가 되는 식물을 직접 키우고 같이 활동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옥천군 청년동아리 지원을 받고 ‘오늘의 행복’이라는 이름의 천연염색 동아리를 했어요.”염료가 되는 식물을 직접 기른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재료를 사서 염색했던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족과 성취감을 느낀 김보영 작가. 화학염료는 단숨에 색을 쨍하게 내는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빠지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천연염색은 고정된 색이 아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을 뽐내는 매력이 있다. 자연스레 바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김 작가는 10여년 전 천연염색한 종이를 꺼내보면 색이 더 숙성되고 고급스러워진 느낌이라고 한다. 화학염색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김보영 작가는 올해 옥천군 청년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오늘의 행복' 동아리를 운영해 지인들과 천연염색 작업을 했다. 사진은 동아리원이 쪽으로 염색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김보영)김보영 작가는 올해 옥천군 청년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오늘의 행복' 동아리를 운영해 지인들과 천연염색 작업을 했다. 사진은 쪽대를 걷어내고 매염제인 조개가루를 넣은 뒤 푸른색 염액을 고무래질하는 모습. (사진제공: 김보영)염색 재료는 민들레, 돼지감자, 땡감, 머위, 봉선화, 쑥, 수세미, 가죽나무, 아로니아, 밤, 호두, 메리골드 등 다양하다. 모두 안남에서 채취했다. 김 작가는 쪽밭을 따로 키워 쪽을 염료로 썼다. 쪽 염색은 염료 중 색을 내기 가장 까다롭다. 염액 보관도 어렵고, 발효도 거쳐야 하고, 여러 차례 저어줘야 하는 등 과정이 꽤 복잡하다. 1년생 풀인 쪽은 파란 색소를 지녀 천연염료 중 유일하게 푸른빛을 띈다. 쪽빛하늘이라는 말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자연의 선물, 천연염색 쪽 염료는 예부터 고가에 거래된 귀한 염색 재료로 우리나라에서 자주 활용했다. 조선시대에 청색 염직물을 전문으로 만드는 청염장이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쪽 염색의 명맥이 끊어졌다. 외국 문물이 들어오고 화학 염료를 수입하면서 품이 많이 들어가는 천연염색 기술이 점차 사라졌다. 오늘날 천연염색은 우리 전통을 살리고, 자연 고유의 색을 환경친화적인 생산 방식으로 입힌다는 점에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김 작가는 인위적인 물질과 색에 벗어나 조금씩 느리게 변하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작품에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전시실에 김 작가가 민들레, 호두, 메리골드 등 다양한 염색 재료로 작업한 견본들을 진열했다. 지난 4월에 채취한 민들레와 매염제 '동'을 활용해 종이 재질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표현했다.김보영 작가가 작품 활동에 쓰는 여러 색상의 천연염색 한지를 뭉치 형태로 보관하고 있다.보라색 계열의 지초를 활용해 천연염색한 한지. 부채처럼 지그재그로 접고 실로 묶어 염색 작업에 들어간다. 접힌 부분에 무늬 자국이 남아있다.대략적인 천연염색 과정은 이렇다. 우선 차를 우리듯 뜨거운 물에 재료를 넣고 끓여 염액을 만든다. 접어놓은 종이를 염액에 넣고 꺼내서 말리면 매염을 한다. 매염은 색을 고착하는 과정인데 보통 백반, 철, 잿물 등을 매염제로 활용한다. 어떤 매염제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색깔이나 색의 진함이 달라진다. 종이는 한지 중에 얇고 질긴 순지를 썼다. 순지는 닥나무를 갈아 직접 뜬 종이인데 얇은 종이를 써야 색이 잘 입힌다고 한다. 보통 접은 종이를 뭉치로 염색하면 접었던 그 자리에 색이 진한 무늬 자국이 남는다.“천연염색은 제 손으로 만든 색이라는 점에 의미가 커요. 반면 화학염색은 우리 몸이나 환경에 좋지 않잖아요. 이번에는 종이를 사서 썼지만, 기회가 되면 닥나무를 심어서 종이를 직접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닥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기면 그게 한지 재료거든요. 제 작품에는 또 백토라는 재료를 썼어요. 도자기 만들 때 쓰는 흰색 흙인데 작품 배경에 바른 거거든요. 이 배경도 자연의 바탕이라고 봐요. 옛 조선시대 도자기를 소재로 하고, 천연염색이라는 전통 기법을 썼지만, 제 작품들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색다르게 다가왔으면 좋겠어요.”'달항아리'라는 소재는 동일하나 천연염색 기법으로 작품마다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든든한 가족의 힘김 작가는 일상에서 금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나며 작품 활동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바람의 감촉을 느끼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고 있다는 소소한 깨달음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김 작가는 향후 옥천에 천연염색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연구실 겸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게 꿈이다.올해 우리고장 청년공예인단체 ‘가온비’ 멤버로 들어갔지만 이번 전시 준비로 많은 활동을 하지 못 해 아쉬웠다는 김보영 작가. 앞으로 옥천에 있는 청년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전시할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제가 쓰는 소재나 기법이 시골에 와서 하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천연염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져서 감사할 따름이고요. 대청호를 보고 있으면 시간에 따라 노을 지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그때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할까요. 매일 지나가는 길이 즐겁더라고요. 이렇게 옥천을 벗 삼아 작품을 낸다는 게 큰 행운이지 않나 싶어요. 이번에 전시 준비하면서 남편이랑 시부모님, 가족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천연염색한 걸 샘플로 보여주려고 전시장에 가져왔는데 같이 만들었거든요. 온 가족이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옥천에 오길 정말 잘 한 거 같아요.”한편, 지난 10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는 2023 옥천군 문화예술창작 지원사업으로 300만원 예산을 지원받아 기획됐다.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3-12-20 18:04
1929년생, 출생년도만으로도 그 울림이 묵직한 95세 어머니.어머니의 작은 어깨, 와락 안아주고 싶어 잠시 주춤했다. 신문사에서 온다고 입술을 바르고 계신 어머니. 뒤돌아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열다섯 살, 큰 애기의 얼굴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 세월이 야속하실까? 그리우실까? 너무 고운 어머니 모습에 고마움이 밀려오는 건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에게 다시 묻는다. 아마도 곱게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며느리 이거여”라며 엄지를 추켜세우신 고부의 정도 어머니의 고운 모습을 만든 힘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았다. 아들내외와 고운 어머니, 훈훈한 수채화 한 폭 수놓아도 손색없는 어머니 댁 정경이었다.■ 이제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은 유년보은 회남면 조곡리가 고향인 나는 작은 마을의 먹고 살만한 집 딸이었다. 공부는 하고 싶었지만 농사가 많다보니 살림이 크고 남동생들 챙기는 일이 내 몫이었다. 애석하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의 전쟁이 아니라 누나로서 남동생을 챙기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인 것이 시대정신이던 때다. 여자로 태어나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여인들에게 미덕이라고 가르치던 시절이다.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학교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쩌면 그 그리움과 갈증이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들의 성장에 정성을 쏟아 붓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이름들, 이남년 윤점례 박복순 친하게 지내던 동무들이다. 90이 넘으니 온통 그리움 투성이다. ■ 우연처럼 다가와 70년 연리지를 같이 심은 남편남편(정진복)과의 만남도 우연처럼 다가왔지만 천생연분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우리 큰집에서 새끼머슴 살던 분이 우연찮게 중매쟁이가 됐다. 이웃분이 친정아버지(황선석)에게 중신을 한다고 하셔서 아버님이 신랑자리를 보러 가던 길에 큰집 새끼머슴이던 분을 만났다. 아버님에게 “형님, 어디 가셔요?”, “응, 우리 한순이 신랑감 보러 간다” 했더니만 그럼 “내가 아는 총각 한번 만나보슈” 라고 건넨 한마디가 내 운명을 결정지었다.아버지는 예정에 없던 만남이지만 남편을 만나보고 첫눈에 마음에 들어 하시며 어머니에게 망설임도 없이 그 청년한테 시집보내자고 하셨다. 어머니는 우려되는 마음에 “사는 건 좀 보고 왔나요?” 걱정 섞인 마음에 말을 건넸지만 아버님은 ‘사람하나 보면 돼요’ 라고 즉답을 하셨다. 아버님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지만 살림 걱정 없이 살던 나에게 맨 바닥에서 일궈야 하는 시댁의 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세월을 거슬러 시집가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아득히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어렴풋이 연지곤지 찍었던 한순이 얼굴이 보인다. 가마타고 세천에 내려서 걸었던 길도 없는 시골의 풀숲, 돌멩이로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던 한순이. 그 이후로 어느새 성큼 달려와 75년을 살아냈다.생전남편과 함께■ 시댁 그리고 남편, 숙제같았지만 결국 내가 보듬어야 할 식구들결혼 후에 남편은 19살에 병사구사령부(현:병무청)로 입대했다. 남편 없는 집에서 기거하다가 친정으로 돌아왔다. 시집오기 전부터 손끝이 야무지고 솜씨가 좋았던 나는 재봉일을 잘해서 제품집에 취직을 했다. 속앓이 하면서 남편만 기다리는 아낙으로 살지는 않았다.그때쯤 우리 어머니가 작은 시동생을 낳았는데 결국 내 차지가 되었다. 예전에는 8남매 9남매가 예삿일이니 시집온 새댁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은 해에 출산을 하는 경우들이 흉이 되지 않았다. 그 틈에 시누이, 시동생 키우느라 정작 내 새끼 젖은 제대로 못 물리는 여인네들도 많았다. 시댁이라는 이름은 내 새끼보다 늘 먼저인, 우리 여인들에게 넘지 못할 산이었다.나도 첫 딸내미 애영이가 생겼다. 아가씨보다 우리 딸이 한 살 위라 아가씨 똥 기저귀도 빨아서 키웠다. 나이가 비근하니 둘이 티격태격할 때는 시누이 나무랄 수도 없고 우리 딸이 안쓰러워서 내내 마음 졸였다. ■ 길도 없던 강원도 산골에서 살림을 시작하며 1등상사로 직업 군인이던 남편을 만나러 큰 딸 애영이 손을 잡고 남편의 부대에 찾아갔다. 지금도 강원도는 먼 거리이지만 대중교통 시설이 척박하던 시대 강원도는 말 그대로 두메산골인 곳이었다.꼬박 이틀이 걸려서 남편의 부대에 도착했다. 딸을 품에 안은 남편은 한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발걸음을 뗐다. 친정에서 귀하게 자라던 큰 애기였지만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면서 강원도의 그 산골처럼 길이 없던 곳에서 수풀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 갔다. 듬직한 남편과 사랑스런 딸, 길이 없는 그곳에서도 두렵지 않은 건 남편의 굳게 잡은 손과 딸의 재롱이었다. 남편의 부대 앞에서 7-8개월 살았을 무렵, 남편이 제대특명이 내렸다고 집에 가있으라고 해서 애영이를 데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달래서 집으로 돌아왔다.찰흙공장 하던 시절■ 약방과 찰흙공장을 하며 살림을 불려나가다 군에서 약을 취급하던 남편은 총기 있고 눈썰미가 좋아서 배운 경험으로 약방 면허를 취득해서 약방을 차렸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은 공부해가면서 대전 전민동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우리는 60년 전에는 앞서가는 사업이던 찰흙공장을 했다. 찰흙, 당시 전국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어느 누구 예외도 없이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쓰던 재료다. 대중화된 상품으로 공장을 운영하니 돈도 벌면서 놉도 얻어서 일을 시키고 집도 한 채 두 채 사면서 살림 불려 나가는 맛에 힘든 줄도 몰랐다. 기계를 돌려서 네모난 봉지에 찰흙을 꽉꽉 채워 박스에 넣고 납품하면 몸은 고단해도 일하는 재미는 제법 컸다. 내조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그만큼 결실이 좋았던 때라 열심히 살았다.■ 사랑이라는 이름들4남매를 두었다. 지금은 옥천에서 아들 며느리와 살고 있는 복 많은 노인이다. 우리 며느리 자랑은 참을 수가 없다. 26살에 시집 왔는데 실낱 끝 만 한 소리도 안 하는 우리 며느리. 매일 가는 주간보호센터에 가서 며느리 자랑이 빠지지 않으니 다들 웃어넘기지만 참으로 고마운 며느리다. 우리 시아버님은 우리 아들 낳고 나는 아들 한 번 업어 줄 새도 없이 손주를 금지옥엽처럼 사랑해주셨다. 우리 며느리가 그 아들의 안식구이며 내 자랑이다. 사랑도 대물림이며 거스를 수 없는 유전자이다.우리 완영이 친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한 아이가 있었다. 영동이 고향인 친구인데 그 아이 어머니가 어느 날 기별도 없이 쌀 한 자루를 갖고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그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왔느냐 하니 자식 맡겨놓은 마음을 어떻게 보답할지 모르겠다고. 그 심정을 나도 헤아리고 남았다. 자식은 그렇다. 곁에 있어도 마음 졸이고 바라보면 마냥 좋아서 가끔씩 어디서부터 맺어진 인연인지 그 발원지를 모르는 인연이기도 하다.부모님이 그랬고 내가 자식에게 또 그렇게 했다. ■ 하루 7식으로 남편을 섬기다남편은 5년 전에 마음이 급했었나 먼저 먼 여행을 떠났다. 남편도 90세에 먼 길을 떠났으니 우리부부 18살에 만나 70년 넘게 살아왔다. 남편한테 말대꾸 한번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 여인네의 덕목이라고 아버지에게 배우고 내내 그리 살았다. 남편에게 하루 7식을 만들어주면서 내조를 했다. 말이 7식이지.굳이 나열해보면 식전에 가볍게 준비, 아침, 샛밥, 점심, 샛밥, 저녁, 주무시기 전에 술 조금 장어 몇 점 구워서 안주로 내 놓는다. 당연하듯이 했고 남편은 감사하게 내내 나의 든든한 우군으로 곁을 주었다가 먼저 여행길에 올랐다. 나도 간간이 그 여행길에 언제 오를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아직도 바늘귀를 꿸 만큼 눈이 밝아 손으로 설거지용 수세미도 뜨고 손녀들 옷도 재봉틀로 리폼해서 입는 신식 할머니이기는 하다. 지금까지 설거지용 수세미를 떠서 선물한 것이 족히 천장은 될 거 같다. 눈이 밝은 게 마냥 기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우리 며느리한테 손이 많이 가는 시애미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아직도 여자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고운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외출할 때는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는다. 직전 만든 된장을 옥천군에 기증.■ 어느 틈에 여기까지 3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썼던 마스크를 나는 아직도 꼭 쓰고 다닌다. 1929년생이니 살아오면서 온갖 일들을 겪었지만 ‘코로나’라는 무서운 복병은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서도 마스크를 꼭 쓰고 있다. 나를 지키고 친구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나이 들수록 더 조심스럽다. “할머니 고우세요”라는 말을 듣고 살게 해주는 우리 사랑둥이들이 있다. 아직도 손주들한테 용돈 줄 수 있는 할미라 나의 소소한 낙(樂)이기도 하다. 우리 4남매 애영, 완영, 미영, 도영이와 손주들 상일, 상미, 상아, 유진이, 유정이, 은수, 혜련이, 혜정이, 동은이 호중이. 이름만으로도 울컥하다. 우리 영감님과 내가 심은 뿌리 깊은 나무의 실한 열매들이다.95년이 한 많은 세월로만 점철되지 않아 감사하고 지금은 내 곁을 지켜주는 우리 며느리가 나에게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아직 한낮은 햇살이 뜨겁지만 새벽녘이면 한기가 돌아 이불을 끌어와 배위에 얹어야 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리 곁에 머문다. 여인으로 내내 살아가다 남편 곁으로 가게 된다면 나는 족하고 족하다. 가슴 설레는 날들도 있었고 고단했지만 말없이 손잡아 주는 남편, 뒤돌아서면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존재의 의미가 있었다. 어느 새 여기까지 왔을까 반문하면 누가 나에게 그 해답을 줄 수 있을까. 허나, 지나온 시간이 쓸쓸하지 않은 건 고마운 아들 며느리 덕분이라고 말한들 흠 잡힐 일이 없다. 오늘은 이 말을 꼭 하고 싶은 날이다. “나처럼 복 많은 할매 있으면 나와 보시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물일반 | 김경희 시민기자 | 2023-10-03 09:50
‘다 보여주지 않는 것.’ 사진을 찍어 와야 하는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여타 사진 동호회와는 차원이 다른 주제였다. 숙제를 안은 사람들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 봐도 색깔이 있고, 구름이 있고, 태양이 있고,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는데 말이다. 사진에는 무언가 대상이 있기 마련이거늘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니. 성능 좋은 카메라에 아름다운 식물과 풍경을 담아 오는 다른 모임들과 성격이 달랐다.보이지 않는 부분을 찍어야 한다, 어떤 의미일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물의 이면’을 찍어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저 멀리 걸어오는 어르신들의 주름진 손을 보고 그분들의 발자취를 상상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보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떠오른다. 어두컴컴한 기차역 공간 안에서 저 멀리 비추는 환한 빛을 보고 희망을 찾는다.사진이라는 것도 어쩌면 말잔치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진작가가 거창하게 어떤 의도로 찍었다 하더라도 달리 볼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사진을 읽는 관점은 다 다를 수밖에 없고, 자기가 경험한 폭만큼 해석의 깊이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기에 사진 동호회 ‘동그라미 포토 아카데미’는 한 걸음 더 욕심을 냈다.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그 이상을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조금 다른 생각, 색다른 시선을 사진이라는 매체에 투영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했다.우리고장 사진 동호회 '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들이 정기 모임을 하는 모습. 지난해 1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는 모임 때마다 주제를 선정해 각자 찍어온 사진들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30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서상숙(왼쪽 첫 번째) 씨가 모임에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사진제공: 서상숙)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사진 초보부터 길게는 5년까지 사진에 관심 있는 옥천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의 열정은 뜨거운데 사진과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은 사진 전공하는 사람과 차이가 있었다. 기술은 인터넷이나 책을 찾으면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겠지만 이들은 사진의 깊이를 채워줄 ‘길잡이’를 간절히 찾았다. 그러던 중 옥천교육도서관 맞은편에 ‘사진카페 2월’을 운영하는 서상숙 씨를 알게 됐고,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사진카페 사장님과 인연이 되어“동그라미가 원이잖아요. 계속 굴러가잖아요. 꺾이는 데 없이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가 동글동글한 지구처럼 굴러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유추해 보는 거예요. 그 이름을 정한 사람이 동수 형이죠? 동수 형한테 물어봐야 해요.”사진 동호회 ‘동그라미 포토 아카데미(이하 동그라미)’ 이름의 유래를 묻자 모임에 참여하는 이다경 씨가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에 만든 동그라미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이진영 씨 그리고 김동수 씨가 사진카페 2월 손님으로 오며 가며 하다가 서상숙 씨에게 사진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모임이다. 2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정기 모임을 하는데 서상숙 씨가 사진 주제를 정하면 이에 맞게 사진을 찍고, 모임 때 1~2시간 정도 서로 사진을 보여주며 의견을 주고받는다.지난 4월7일 읍내에 있는 사진카페 2월에서 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모임이 열렸다. 왼쪽부터 서상숙, 이다경, 이재규, 이진영 씨.지난 4월7일 오후 6시30분 사진카페 2월에 도착하자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 이날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 온 이다경 이재규 이진영 씨가 참여했는데 현재 동그라미 식구가 9명으로 늘었다. 회원들이 선생님으로 모시는 서상숙 씨부터 기존 회원인 김동수 씨 그리고 양금희 황은혜 이은숙 안상남 씨가 새로운 멤버로 들어왔다. 동그라미는 지난 6월20일 옥천군에서 지원하는 ‘삼삼오오 학습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돼 모임 활동에 탄력을 받았다.■ 옥천에 또 다른 사진 문화 만들고 싶어동이면 지양리에 사는 이재규 씨는 2015년 옥천에 귀촌했다. 2019년 말 퇴직하고 취미생활을 찾던 중 옥천군미디어센터에서 하는 사진 수업을 듣고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인에게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서상숙 씨를 소개받아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진을 시작한 그는 이제 틈날 때마다 서상숙 씨에게 사진 조언을 구하고 있다.“오늘처럼 수업 시간이 되면 긴장감이 있어요. 저는 주제에 관한 이해는 빠른데 그걸 사진으로 담아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요. 서 작가님은 30년 이상 사진을 한 전공자니까 배울 점이 많죠. 저희는 상업 사진도 아니고, 필름 사진을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작가님만이 가진 고유의 사진 느낌이 좋았고요. 그래서 이런 모임을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원하는 분들이 있으면 동행해서 옥천에 또 다른 사진 문화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 이재규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이재규)지난해 4월부터 옥천군미디어센터 수업을 계기로 사진을 취미로 접한 이진영 씨는 읍내에서 명륜당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날 사진 주제인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어렵게 다가왔다고 한다. 난해하다고 정평이 난 철학을 전공했어도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그에게 쉽지 않은 과제인 듯했다. 이진영 씨는 오는 10월 동그라미 회원들과 함께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단체전을 열 예정이라고 알렸다.“우리 같은 초보자들이 1년간 공부한 걸 옥천에 보여드리려고요. 사진에 관해 묻고,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우리 작품을 보고 사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도전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싶었죠. 사진을 하면서 저 스스로 변화가 일어났어요. 생각도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바뀌고, 더 따뜻하게 변했다고 할까요. 생각이나 시야가 더 넓어진 게 큰 변화인데 서 작가님의 지대한 공이 있었죠.”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장을 맡고 있는 이진영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이진영)■ 따로 또 같이 사진으로 어깨동무취미생활로 미술을 오래 한 이다경 씨는 사진을 햇수로 5년 했다. 평소 식물을 좋아한 그는 예쁜 꽃을 보면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게 취미였는데 만족스러운 사진을 건지지 못 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예쁘게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잡았는데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어떻게 하면 잘 찍을까’ 고민하며 도전 의식을 키웠다고. 한때 이틀에 한 번 출사하고, 하루에 1천500컷 이상 찍을 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한 그는 서상숙 작가를 만나 또 다른 사진 세계를 접했다.“지금은 열심히 하고 행복해하면서 이 작업을 하지만 어쩌면 옥천에 사진 판도를 바꾸지 않을까 싶어요. (서상숙) 선생님은 과제 하나 딱 던져주면 알아서 찾아보라고 해요. 각자 따로 가는 거죠. 우리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렇게 찍어라’ 그런 게 없어요. 단체 출사도 다녀왔지만 가서도 따로 해요. ‘어디 가면 이런 스타일의 사진이 나오니까 거기 가서 찍어라.’ 그런 게 아니에요. 음식을 해서 입에 넣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음식 재료만 던져주는 거죠. 배추 하나 주고 김치 담그라는 식인데 저는 이런 수업이 좋아요.”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 이다경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이다경)이 세 사람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서상숙 씨를 만나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더 깊어졌다고 말이다. 옆에서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서상숙 씨는 과한 칭찬이라 느꼈는지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다. 그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이 있는 모임을 이끈다는 건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30년 이상 사진을 했어도 부담인 모양이다. 살아온 이력도, 현재 하는 일도 다 다른 회원들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모습이었다.“기술적인 것들은 여기 선생님들이 다 알아서 공부해 오셔요. 처음에는 부담돼서 올해까지만 하고 안 하겠다고 했는데 혼났어요. 너무 열심히들 하시니까 제 딴에는 부담으로 다가오죠. 가르치는 제 입장에서는 따로 공부해야 하니까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사진을 찍는 동기가 생기는 면도 있고요.”지난 5월5일 동그라미 회원들이 서로 찍은 사진들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서상숙)동그라미 회원들은 2주에 한 번 금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상숙)■ 대나무의 마디가 생기는 것처럼지난 4월21일 모임부터 합류한 동그라미 회원 양금희 씨는 말한다. 3~4년 전부터 사진을 배운 뒤로 주변 환경이나 동·식물과 같은 작은 존재를 더 자세히 보는 습관이 생겼고, 주변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내재한 사진을 지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말이다.이처럼 동그라미 회원들은 사진을 찍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고, 행복해했다. 점차 자기만의 사진 세계를 정립해 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앞으로 동그라미 모임이 어떻게 나아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동그라미 모임 회원이 한 명, 두 명 늘어나는 모습에서 보이듯 사진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뻗어나가 옥천만의 또 다른 사진 세계를 확장해 나갈지 모를 일이다.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 양금희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양금희)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 김동수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김동수)동그라미 포토아카데미 회원 서상숙 씨가 찍은 사진. (사진제공: 서상숙)30년 넘게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사진을 배우는 단계에 있는 초심자들이 함께 걸어가는 동그라미 포토 아카데미. 삶의 경험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이들이 그려나갈 동그라미가 앞으로 더 멋진 모임으로 커 나가지 않을까 기대된다. 동그라미 이진영 회장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우리가 찍은 게 잘 찍었는지 모를 때 모임에서 같이 이야기하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에요. 마치 대나무의 마디가 딱 생기는 것처럼요. 아까 다경님이 얘기했듯이 사진은 예술이잖아요.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부분이 있잖아요. 규범적이고 정형화한 것들을 무너뜨리는 게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진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기도가 따로 없고, 명상이 따로 없고, 힐링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동그라미 회원들이 새벽 출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서상숙)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3-08-09 17:44
편집자 주_영동 매곡면을 돌아다니던 중 전문 바리스타의 카페 ‘물한모금’을 발견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진한 커피 향이 진동한다.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최길호 대표(38, 대전 죽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카페 ‘물한모금’은 영동군 물한계곡을 따라 지었다. 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이고 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카페 이름에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냥 카페라고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요. 커피도 마시고 고기도 구워 먹고 강아지 데리고 와서 놀기도 하고 밑에 계곡에서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카페 ‘물한모금’ 대표 최길호 씨는 작년 대전에서 내려와 영동 매곡면에 카페를 차렸다. 짙은 녹음 사이로 새하얀 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위에 논과 밭을 제외하면 다른 모습은 찾기 힘든 곳이다. 그런 곳에서 카페를 발견하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카페 앞에 당도하면 한 남자가 물뿌리개로 하트를 뿌리고 있는 벽화가 보인다. 카페 사장님을 그린 것 같다. 따스하고 정감 있는 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벽화가 그려진 외관을 구경하고 작은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무도 없었던 밖과 달리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들 사이로 고소한 커피 향이 났다. 자연을 그린 풍경화와 라탄 풍의 조명은 카페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큰 유리창 너머로 여름의 싱그러운 풀들이 보인다. 시끄럽고 쉴 틈 없는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시골 힐링 카페였다. 최 대표가 그려진 벽화이다. 이 벽화는 카페에서 유일하게 전문가와 함께 만든 공간이다.카페 ‘물한모금’을 연 최길호 대표가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다. ■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만든 카페 깔끔하고 정겨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물한모금’은 원래 설씨토정가든이라는 매운탕 집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식당을 멀끔한 카페로 개조하기 위해 최길호 대표는 매일 구슬땀을 흘렸다. 카페 구석구석 어디 하나 손을 안 거친 곳이 없다. 작년 6월, 한 달 동안 낡은 장비와 가구를 버렸다. 꺼내서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새 단장을 위해 간판도 직접 그리고 카페의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는 라탄 풍의 조명등과 전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함께 사시사철 바깥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창문을 만들었다. 덕분에 손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창밖에 비친 다양한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테리어를 위해 벽을 뚫는가 하면 의자를 조립하여 알록달록 색을 칠하기도 했다. 벽화도 그리려 했지만, 이 부분은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어 전문가를 불렀다. 카페 곳곳 작은 소품조차 허투루 두지 않았다. 벽면에 세워둔 나무판자는 목소리가 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였다. 찬장에 무심히 올려진 옛날 물건은 삼성이 최초로 낸 귀한 핸드폰이었다. 또한 크레스티드 개코라는 도마뱀이 카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보일러 회사에 10년간 근무하면서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목이 마르다. “지금 구조가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더 심플하게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소품에도 기분이 달라지더라고요. 난 예민하지 않은 곰 같은 사람이었는데 예민해졌어요. 이 공간을 만들고 나서는 계속 앉아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쓸데없는 것도 한번 해보고 좋은 것도 해보고 그래요. 같은 한 공간이라도 정성을 들여야 해요.” 무언가에 몰입한 듯 두 눈이 반짝였다. 그 공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직접 뚫은 벽 사이로 라탄 풍의 조명과 아기자기한 소품이 보인다. ■ 진심 100%의 커피를 내리다. 카페 공간뿐 아니라 손님이 마시는 커피에도 진심을 가득 담았다. 제대로 된 커피를 배우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일을 그만둔 후 우리나라에서 로스팅을 가장 잘한다는 홍명요리학원 강병호 원장을 1년 동안 따라다녔다. ‘물한계곡’이라는 카페 이름도 원장님의 조언으로 탄생했다. “스승님이 카페 이름을 지을 때 지역에서 유명한 데를 녹여 넣어야 기억 속에 남는다고 하셔서 여기 물한계곡이 유명하니까 이걸 붙이면 되겠다고 해서 만들었죠.” 국내 최고 바리스타에게 배운 블렌딩과 로스팅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커피 맛을 내는 기술을 익혔다. 여느 프랜차이즈 커피처럼 쓰지 않고 고소한 향이 오래 남는 커피였다. 커피의 맛처럼 원두도 예사롭지 않다. 에티오피아, 브라질, 콜롬비아 등의 원두를 블렌딩 하는데 그 비율은 비밀이다. 커피의 맛이 궁금하다면 카페를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 “이 커피는 달라요. 제가 만드는 커피는 맛있어요. 커피 향이 담긴 후미가 오래 가요.” 이곳은 커피를 마시는 순간과 그 이후까지 생각한다. 진심이 가득 들어간 커피는 내리는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카페에서 뻗어나가는 꿈 “저의 최종 목표는 큰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만드는 겁니다. 물한모금 카페 같은 공간을 전국에 여러 군데 만들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거예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와서 기술을 배우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살았던 과거는 꿈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집 안에 혼자 있는 청소년에게 꿈을 꾸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물한모금 카페는 무엇이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밖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고 맥주도 마실 수 있다. 강아지를 자주 데려오는 손님을 위해 강아지 놀이터를 마당에 짓고 있다. 입소문이 난 카페는 단골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워낙 카페가 없는 지역이고 차를 타고 가야 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 친구나 가족들에게 한 번 들었을 때 ‘카페가 있구나’ 알게 되고, 두 번 들었을 때 호기심이 생긴다. 세 번째 들었을 때 비로소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한 번 온 손님은 편안함을 느끼고 자주 발길이 닿아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5월 봄에 성백기 씨 정원(용천리)에서 열린 음악회 ‘흙, 날아오르다’에 커피와 붕어빵을 지원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마음도 가까워진다고 하던가. 마을 사람을 찾아가고, 카페에 찾아오는 마을 손님을 반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과 친해졌다. 최길호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최 대표는 마을 사람들의 스타가 되었다. 물한모금 카페는 원데이클래스도 진행한다. 커피를 볶는 로스팅 과정과 마들렌과 같은 빵을 굽는 베이킹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원데이클래스는 미래 계획을 위한 발판이다. 교육을 통해 후임자를 찾는 과정이다. 후임자를 길러 이곳을 물려준 후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날 예정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며 살고 싶은 사람에겐 더없이 기쁜 소식이다. 그렇게 여러 공간을 만든 뒤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사실 이제 시작이죠. 이거 하려고 기술도 배우고 그랬어요. 40년 플랜 중에서 절반 지나왔고, 절반이 남았어요. 미쳤다고들 해요.” 10년 동안 배운 시공 기술과 1년 동안 스승님을 쫓아다니며 배운 커피 만드는 기술은 물한모금 카페를 위한 돌다리였다. 그의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주소: 충북 영동군 매곡면 용촌1안길 3 물한모금전화번호: 0507-1345-2871영업시간: 오전9시~오후9시 (화·수·금·토) / 오전9시~오후5시 (목·일)매주 월요일 휴무
인물일반 | 임채림 기자 | 2023-08-09 17:44
편집자주_옥천의 이웃 마을인 영동으로 탐방을 왔다. 더위를 피해 정겨워 보이는 이름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산울림 마을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로컬푸드에 대한 애정이 카페 곳곳에 묻어나있다. 그곳에서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영동 상촌면의 주민을 만나 상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영동 상촌면에 위치한 카페 이웃상촌은 산울림 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다. 상촌의 이웃사촌이 되겠다는 정겨운 마음으로 로컬푸드를 사용한 팥빙수, 음료, 임산물 등을 판매하고 있다.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폭염이 시작된 지금, 카페에서 파는 팥빙수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 같다. 여기 그 선물을 푸짐하게 주는 영동의 한 카페가 있다. 이름마저 정겨운 카페 이웃상촌에 들어서면 모든 테이블이 인절미 수제 팥빙수(1만원)를 먹고 있다. 4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옹기종기 모여 팥빙수 한 그릇으로 더위를 나고 있었다.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오래된 선풍기는 여름의 열기를 한 층 식혀줬다. 이어 팥빙수가 하나 더 나오자, 양이 많아 더 이상 먹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카페에서는 팥빙수 하나에 2인분이라고 했지만, 대접에 가득 나오는 팥빙수는 4명이 먹어도 거뜬한 양이었다. 이런 점들은 카페 이웃상촌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든다. 양도 많이 주는 이웃상촌은 무엇보다 재료에 진심이다. 영동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하여 판매하는 팥빙수가 그 예다. 다양한 잡곡류를 판매하는 평화쌀상회(영동읍 계산로)에서 산 팥을 직접 쑤어 빙수를 만든다. 그러니 정성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음식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이웃상촌은 복숭아 빙수, 호두 파이, 자두청을 로컬푸드로 만들 예정이다. 조만간 이웃상촌은 상촌의 특산품을 개발하는 대표 카페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명소를 찾아가 미리 경험해도 좋을 것 같다. 카페 이웃상촌은 영동 상촌면의 임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산울림 마을협동조합에서 만든 공간이다. 이웃상촌이라는 이름 또한 산울림 마을협동조합원이 함께 만들었다.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뜻도 있고, 상촌에 벌써 좋은 이웃들이 살고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카페 이웃상촌의 대표인 김희정(48) 씨는 이웃상촌의 두 가지 뜻을 설명하면서, 이름에 대한 만족감을 밝은 미소로 드러냈다. 조합원 만장일치로 이 이름이 선택되었다고 한다.카페 이웃상촌의 인절미 수제 팥빙수(1만원)의 넉넉한 양을 볼 수 있다.카페 이웃상촌의 대표인 김희정 씨가 이웃상촌이라는 상호명을 짓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카페의 정겨움을 더해주는 레트로풍 선풍기가 손님의 더위를 한 층 식혀주고 있다.■ 영동 로컬푸드의 변신 호두 파이를 로컬푸드로 만들기 위해 김희정 대표는 하루도 쉴 틈이 없다. 밀밭 삼천 평을 가꾸는 상촌면의 남승록 씨를 만나 밀 공급을 약속하고, 여성농민회 언니들의 텃밭에서 나는 우리 밀을 알아보기도 했다. 청주의 미원 산골 마을 빵집이 우리 밀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후 연락하여 조언도 구할 예정이다. 호두 파이뿐 아니라 복숭아 빙수 또한 로컬푸드로 만들 계획이다. 복숭아를 구매하기 위해 농민회 상촌 지회장 박장현 씨의 복숭아 농장을 찾았지만, 지금은 아직 당도가 올라오지 않았다며 조금 기다리라는 대답을 받았다. 곧 딱딱한 복숭아는 차가운 얼음 위로 올라가 빙수가 되고, 물렁물렁한 복숭아는 끓여서 잼이 될 운명이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군침이 돈다. 조만간 이웃상촌을 방문하면 복숭아 빙수를 맛볼 수도 있으리라. 무더운 여름, 달달한 복숭아가 올라간 시원한 빙수를 위해 이웃상촌에 방문하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빙수 말고도 이웃상촌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달콤한 과자인 수제 오란다, 수제 강정과 함께 다양한 꽃차는 카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일반 카페에서 보기 힘든 이름마저 생소한 목련차, 박하차, 생강 꽃차가 있으며, 음료 외에도 취나물, 산뽕잎, 건표고, 다래 순 등 다양한 버섯과 나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모두 이 지역에서 난 로컬푸드이다. “100g씩 작게 포장해서 선물 세트로 만들고 싶어요. 그게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가 되고 저희가 사회적 기업이 되었을 때 저희의 상품이 되는 거죠.” 앞으로 이웃상촌은 영동 임산물을 홍보하는 큰 손이 될 것이다.영동의 여러 가지 임산물이 판매용으로 전시되고 있다.■ 마을과 공존하는 이웃상촌 로컬푸드를 알리고자 하는 김희정 대표의 날갯짓은 마을 주민의 원동력이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스마트스토어를 활용해 상촌의 임산물을 판매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인터넷이라는 장벽을 깨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때 구세주처럼 천홍(미니사과) 판매자 박말금 씨가 나타났다. 천홍은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영동의 특산품이 되었다. 스마트스토어에 익숙한 박말금 씨는 지역 주민들의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천홍을 널리 알리고 싶은 그의 바람도 이뤄지는 것이다.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이 만나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지 기대된다. 스터디는 매주 화요일마다 열린다. 앞으로 영동 상촌의 로컬푸드가 전국적으로 뻗어나갈 일만 남았다. 이웃상촌은 카페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김희정 대표의 열정은 이 더운 날씨에도 꺾이지 않는다. 그녀는 땡볕에 비닐하우스를 한 채 지었다. 이곳에 목화를 심고 아이들에게 옷의 원리를 알려줄 생각에 열정이 불타오른다. 아이들은 목화를 직접 채집하여 실을 뽑는 위빙 과정을 놀이처럼 배울 것이다. “도시 아이들이 여기 와서 머무는 산촌 유학을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은 그 형편이 안 돼요. 우선 숙소와 교사가 있어야 하고 학교가 협조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역사회의 장기적인 목표에요.” 김희정 대표의 열정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한 부분이다. 허브를 이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활동도 펼칠 예정이다. 키운 허브를 추출하여 화장품, 연고, 오일, 차 등을 만들어 즐길 수 있다. 무궁무진한 허브의 모습은 곧 이웃상촌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렇게 지역 주민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김희정 대표는 꿈꾸는 사람만의 특유한 밝음을 보여줬다.■ 지속 가능한 상촌이 되기 위해 이웃상촌의 대표 김희정 씨는 갈마루 지역아동센터에서 10년 넘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상촌의 대표 선생님인 셈이다. 아이들은 커서 청년이 되었고, 상촌을 떠나기 시작했다. 김희정 대표는 아기 때부터 동고동락하던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살던 지역에서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친구들도 없으니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김희정 대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상촌에서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붙잡을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희정 대표는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성장학재단을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양평의 상상공작소 사회적협동조합을 알게 되었다. 상상공작소는 초기에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청년의 일자리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양평도 상촌처럼 인구소멸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김희정 대표는 청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앞서 계획한 여러 프로젝트에 청년을 채용하여 지속 가능한 상촌을 만드는 목표를 갖고 있다. ■ 상촌의 거점이 되고픈 이웃상촌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김희정 대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금 김희정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같은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김희정 대표는 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 힘 있는 목소리, 큰 영향력이 그녀의 목표를 달성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지역 주민들,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김희정 대표와 같은 의지 넘치는 마을 활동가가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웃상촌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촌의 거점이 되는 것이다. “청년들이 재미있게 뭘 할 수 있어야 여기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일을 할 청년이 필요하고 우리가 청년을 채용하지 해야 하고 그런 거죠. 그러면서 이웃상촌이라는 공간이 주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상촌의 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김희정 대표가 그리는 상촌의 미래이다.주소: 영동군 상촌면 민주지산로 3019-2 카페 이웃상촌전화번호: 0507-1407-0825운영시간: 오전 9시 ~ 오후 8시
인물일반 | 임채림 기자 | 2023-08-08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