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873건)

서예 하나로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흔치 않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한 달 내내 서예 강의를 해도 지치지 않을 만큼 열정이 넘치는 작가다. 1979년 군생활을 마친 뒤 작가로 활동하며 우리고장에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우리고장에서 왕성한 문화 활동으로 서예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대표 서예가 평거 김선기(70, 읍 죽향리) 선생은 올해로 고희를 맞았지만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욕구에 맞는 파격적인 예술작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23대 순조임금상량문필사본 9m×83cm, 중수기 8m×83cm를 완성해 인릉 정자각에 봉안했다. 지난달 2일 구읍 그냥찻집 인근 자택에서 만난 평거 김선기 선생이 그가 수집해온 오래된 LP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서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현판과 아펜젤러 기념공원 표지석 휘호, 옥천역 광장, 구읍 정지용문학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의 모든 현판, 옥천군청, 한밭대학교, 충북도립대학교, 영동법원, 영동검찰청에 기증돼 있는 대형 향수 작품을 비롯한 각종 현판이나 표지석에 그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그동안 평거 선생은 옥천여성회관 27년, 보은문화원 25년,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에 18년째 서예 강의를 맡고 있다. 또한 대전에서 서예학원 운영 5년을 마감하고 서예 불모지였던 1986년 옥천에 들어와 정착한 뒤 지금까지 지역 서예문화발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평거 김선기 선생이 관리하고 있는 평거민속박물관. 그가 수십 년간 수집한 골동품들을 집대성한 장소다. 지난해 10월 옥천전통문화체험관 관성관에는 코로나 기간 중 준비한 붓놀이 작품 100여점으로 서화전을 연 바 있다. 2008년 3회 ‘연주 없는 붓가락’, 2019년 4회 ‘먼 길’에 이어 2023년 5회 ‘붓놀이’ 서화전은 서예를 비롯해 문인화 및 서양화까지 아울렀다.현재 그가 거주하고 있는 ‘평거민속박물관’에는 40여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수집해 온 귀중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우리 선조들이 즐겨 쓰던 물건 하나하나에는 질박하면서 순수함이 담겨 있다. 평거 선생은 조상의 혼과 땀이 배어 있는 옛 물건들을 통해 작품 활동에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평거 김선기 선생은 자택 3층에 있는 서실 '불염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서실에는 그의 손때 묻은 붓 수백 자루를 만날 수 있다.1층 ‘평거민속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서화가들의 작품과 실생활에 즐겨 쓰였던 근현대 소품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그리고 2층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광복을 위한 대한독립만세 태극기를 비롯해 조선광문회 서함, 120년 된 풍금, 최초 진공관 TV를 포함해 귀중한 서화 작품들이 소장돼 있다.평거 선생이 늘 붓과 함께하는 3층 붓질방은 작가가 지금까지 평생을 쓴, 다 낡은 수백 개의 몽당 붓들이 서실 한 켠에 전시돼 있다. 그리고 서재에는 과거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쓰였던 고서와 교재들이 빼곡히 진열됐고, 서예가가 작품을 완성할 때 필요한 낙관이 가득했다. 평거 김선기 선생은 지난해 10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열린 '붓놀이'까지 개인전을 5회 하며 전시했던 작품들을 서화집으로 남겼다. 왼쪽부터 평거 김선기 두 번째 서예전, 연주 없는 붓가락(3회), 먼 길(4회), 붓놀이(5회).지난해 10월 평거 김선기 선생의 다섯 번째 개인전 '붓놀이'를 전시하며 펴낸 서화집. '고향의 앞산', '선의 본질', '삶의 무게' 등 그가 창작해낸 84개 서예 작품이 수록돼 있다. 과거 한학 공부를 할 당시 황도 유범장 선생이 내려준 아호 ‘평거’는 ‘평안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당부의 말이기도 하다. ‘불염재’는 논어에 나오는 ‘학이불염’(배움을 싫어하지 말라는 뜻) 내용 중에 당호로 삼아줬다.평거 선생이 추구하는 서화의 본질은 기운생동하는 획뿐만이 아니다. 먹색이 가진 특색을 살려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을 쉽게 이해하고 흥취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자유분방한 가운데 획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채색을 과감히 도입하기도 한다. 평거 김선기 선생이 서실에서 그의 다섯 번째 서화집 '붓놀이'를 펼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붓놀이' 전시 때 선보인 서예 작품 '정지용 님 시 향수'.'붓놀이' 전시 때 선보인 서예 작품 '舞'(춤출 무).평거 선생은 서예뿐만이 아니라 서양화는 물론 전각의 세계까지도 뻗어나간 예술가다. 평생을 스승이나 누구의 도움 없이 작가의 힘든 길을 홀로 걸어왔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소품 및 컵, 도자기, 전각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차별화한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일 계획이다.그는 말한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오로지 붓! 붓과 함께 하련다.’우리고장 서예가 평거 김선기 선생이 '정지용 님 시 향수'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예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는 그는 옥천여성회관, 보은문화원, 한밭대 평생교육원에 다년간 서예 강의를 나가며 제자를 길러내고 있다.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4-05-09 13:22

음악은 알면 알수록 묘한 힘이 있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이어주는 힘이랄까. 생각하는 것도, 쓰는 언어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유대하게 해주는 특별한 마력이 음악에 깃들어 있다. 유연하면서 강한 무언(無言)의 힘. 알게 모르게 타인을 경계하고, 구분 짓게 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음악을 더 갈구하며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는지 모르겠다.옥천엔 기타 공연이나 노래 공연이 많다. 트럼펫은 조금 낯설다. 흔히 아는 국민의례부터 군대 기상나팔까지 단번에 들으면 익숙한데 옥천에선 생소하게 느껴지는 악기 중 하나다. 옥천에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는 숨은 고수가 있다. 아마추어와 결이 다른 프로 전공자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실력 좋은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소통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 했다. 유선주(27, 읍 가화리) 씨 이야기다.유선주 씨는 충남대 관현악과에서 트럼펫을 전공해 2년 전 졸업했다. 삼양초, 옥천여중, 청주 일신여고를 나온 그는 14년째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옥천 와이즈뮤직 오케스트라, 대전 메시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다. 옥천 동이면 유채꽃 음악회, 옥천군 도시재생뉴딜사업 반짝축제, 김광석 추모콘서트, 대전문화예술지킴이 감사콘서트, 제주 국제 관악제 등 여러 공연에 참여한 유선주 씨. 옥천에 보기 드문 트럼펫을 연주하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삼양초, 옥천여중, 청주에 있는 일신여고를 나온 유선주 씨는 옥천여중 관악부 '예다움' 단원으로 활동하며 음악을 접했다. (사진제공: 유선주)■ ‘악기 하는데 와 볼래?’“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같이 입시 준비한 동기들을 보면 음악을 중도 포기한 친구들이 꽤 있거든요. 저는 원하는 직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삶의 만족도도 높고요.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내면에 깃든 예술의 끼를 찾은 건 세 살 무렵이었다. 인천에서 열린 에어로빅 공연 때 단상에 올라 춤을 추고 문화상품권을 탔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음악 듣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춤은 잘 못 추지만 나름 흥이 넘친 아이였다.음악을 전공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렸을 땐 교사가 되고 싶었다. 경찰로 일하는 아버지 영향으로 경찰도 장래희망 중 하나였다. 악기를 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친하게 지낸 옥천여중 1학년 언니들이 ‘너 악기 하는데 와 볼래?’ 권유해서 악기를 접했다.옥천여중 관악부 ‘예다움’에서 단원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만났다. 중학교 입학하면 찾아오라고 했다. 그렇게 여중에 입학하고 관악부에 들어갔다. 처음엔 테너 색소폰을 배정받았다. 악기도 무겁고, 재미도 없고, 선배들 사이에 주눅 든 시절이었다.먹구름 속 한 줄기 빛은 음악하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열심히 불려고 피스랑 악기를 집에 가져가 불렀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에게 자랑도 했다. 그땐 가벼운 취미였으니. 어느 날 강사로 온 선생님이 트럼펫을 권유해 트럼펫을 잡았다. 중학교 1학년 중간이 지날 때였다.■ 음악의 재미 알려준 선생님달랐다. 색소폰과 트럼펫 부는 소리가 차원이 달랐다. ‘조금만 더 해볼까?’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악보 보는 법도 모르던 시절, 어느 순간 운지법 번호를 손으로 써 가며 연주하니 3~4개월 만에 웬만한 곡들을 섭렵했다. 누가 가르쳐줘서 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터득했다.중학교 1학년 때부터 트럼펫을 잡은 유선주 씨는 취미로 악기를 접하다 음악에 소질을 느껴 전공으로 나아갔다. (사진제공: 유선주)트럼펫을 권유한 강사 선생님이 트럼펫을 전공해보라고 했다. 재능이 있다는 이야길 들은 부모님도 악기에 전념할 수 있게 지켜봐 줬다. 청주 일신여고 관악부에 진학해 3년간 악기 연습을 죽어라 했다. 관악부 특유의 규율과 딱딱한 분위기에 기가 눌렸지만 지나고 보니 음악의 지평을 넓힌 소중한 시간이었다.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1년만 다니고 재수를 택했다. 남들은 대학 다니면서 꽃구경할 때 다시 지독한 수험생활로 돌아갔다. 뒷바라지 해주고 시험장 갈 때마다 동행해준 부모님. 충남대 관현악과 17학번으로 들어간 과정에 힘을 준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목원대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김진성 선생님이 제 은인이에요. 재수 생활할 때 만난 분인데 제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어요. 좋아하는 음악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으니 감사했죠. 음악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때 자신감을 많이 찾은 거 같아요.” ■ 치열함 벗어난 지금이 더 행복트럼펫을 놓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숨을 늘리는 건 반복 훈련으로 가능하나 슬럼프가 간간이 찾아왔다. 그럴 땐 관악기 연주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거울을 보며 어떻게 하면 잘 불리고, 안 불리는지를 파악하며 잘못된 습관을 고쳤다. 음악은 노력하는 사람 못 따라간다. 재능보다 연습이 더 중요하다.유선주 씨가 지난해 9월21일~23일 금구어린이공원에서 열린 '도시재생반짝축제'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제공: 유선주)고등학교 때 청주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을 뿐 옥천에 줄곧 살았다. 대학 4년 내내 악기 가방, 책가방 메고 통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재직 중인 경찰서에서 ‘경찰의 날’ 행사 때 트럼펫을 연주했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불렀다.전북 순창에서 열린 ‘수재민을 위한 콘서트’에 나가 연주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2020년 9월24일,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 긴 머리에 노란 원피스 입고 연주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참여한 공연이었다. 주최 측이 돈을 주셨지만 수재민을 위한 계좌로 기부했다.대전에서도 금관 5중주 팀에 들어간 적이 있다. 지난해 여름 대전 마치광장에서 재즈풍 곡들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 꼬마들이 와서 ‘우와, 멋있다’며 사진도 같이 찍었다. 악기를 좋아해서 부는 것뿐인데 관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며 보람을 느꼈다. “실은 악기하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입학 실기가 끝나면 울었을 정도로 공포증이 심했거든요.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악기를 즐기면서 한다는 게 좋아요. 시험이나 공연에 압박이 없으니까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좋아요.”■ 트럼펫 연주와 함께 하고 싶은 일옥천 문화예술활동의 분기점은 3년째 활동 중인 ‘옥천 와이즈뮤직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옥천 와이즈뮤직 오케스트라는 가화리에 있는 행복한교회(감리회)가 운영한다.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트럼펫 등 관심 있는 악기가 있으면 누구든 관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유선주 씨가 지난해 11월23일 옥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옥천와이즈뮤직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연주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제공: 유선주)코로나 이전에 부활절 연합예배가 있으면 지원을 나갔다. 그때 지휘자가 행복한교회 오필록 목사님이었다. 옥천여중 관악부 생활할 때부터 알고 지낸 분이다. 오케스트라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이 교회에 다녔다. 오는 11월에 있을 정기연주회도 무조건 참석이다.“행복한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악기 부는 게 그저 감사하죠. 지난해부터 옥천에서 공연 활동하면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거 같아요. 옥천은 트럼펫 자체가 듣기 어려운 장르잖아요. 제가 가르친 수강생 분한테 추천받아 동이면 유채꽃축제도 나오고, 반짝축제도 참여하게 됐어요.”옥천에 활동 범위를 넓히려고 예술인지원사업 신청도 했다. 36개월 미만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려고 ‘키즈 콘서트’를 기획했다. 옥천에 없는 걸 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남녀노소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옥천이 됐으면 바람은 변함없다.트럼펫 연주자로만 살기엔 세상일이 녹록지 않았다. 학점은행제로 보육교사 아동학사를 취득해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하고, 피아노학원 이론강사로도 뛰고 있다. 향후 청소년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청소년지도교사도, 우쿨렐레나 칼림바와 같은 악기로 방과후수업 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트럼펫 알기 쉽게 가르쳐드려요’두드려보니 길이 열렸다.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연주회를 두 번 했다. 보육교사가 되기 전 실습 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곡을 편성해 음원과 악기를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트럼펫 특성을 알려주는 교육 시간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어린이집에 연주할 계획이다.유선주 씨는 입시와 각종 공연에 압박을 느끼던 시절을 지나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며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사진제공: 유선주)“피아노학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제가 실습지에서 6주 동안 함께했던 아이들을 만났어요. 아이들이 기억하더라고요. ‘트럼펫 선생님’ 이러는 거예요. 아이들이 막 놀라면 ‘나 누구게?’ 물어봐요. 그러면 ‘유선주 선생님이요’ 하는 친구도 있고, 기억 못 하는 친구들은 ‘트럼펫!’ 그래요. ‘맞아, 나 트럼펫이야.’ 그러면서 내 이름은 유선주라고 알려주죠. 나름 재밌는 삶을 살아요.”혼자만 잘하면 무슨 재민가. 트럼펫을 알기 쉽게 알려드리고 싶어 개인 레슨생을 받고 있다. 연령 상관없이 기초부터 연주까지 할 수 있게 해드린다. 악기는 따로 준비해야 한다. 악기는 기본 100만원 정도 하는 고가지만, 몇 십 년을 지나도 관리만 잘 하면 계속 쓰는 게 금관악기다. 저렴한 악기를 구하고 싶다면 중고 악기를 찾으면 된다.70대 할머니도 트럼펫을 배우니 늦은 나이란 없다. 트럼펫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먼저 물어본다. ‘어디까지 해보셨을까요?’ ‘어떻게 접하셨나요?’ 소리 내는 걸 들으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하시면 좋아요, 그럼 소리가 달라질 거예요, 한 번 해보시겠어요? 잘 하셨어요, 조금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피드백을 드린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레슨은 레슨 시간에 끝내는 게 맞지만 필요하면 보강도 한다. 수업 외적으로 악기 연주할 때 문제점도 짚어드리며 상담도 한다. ‘소리가 달라졌다’ ‘악기 부는 게 편해졌다’는 이야길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옥천에 숨은 예술인이 많아요”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유선주 씨는 트럼펫에 관심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개인 레슨생을 모집하고 있다. (사진제공: 유선주)“(트럼펫 배우는 분들이) 음악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통과해야 할 단계들을 숙제처럼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 진도가 조금 늦더라도 꾸준한 사람은 못 이기는 것 같아요. 꾸준히 하면 나중에 가서는 효과가 나오거든요. 운동과 마찬가지로 악기도 정직해요. 한 만큼 나와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점차 실력이 는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학창 시절 오케스트라에서 멜로디 라인을 담당하는 ‘퍼스트’도, 시간이 지나 저음 영역을 담당하는 ‘세컨’ ‘서드’ 자리도 두루 맡아봤다는 유선주 씨. 그는 자리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음악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음악 세계가 조금씩 깊어지고 여물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앞으로 트럼펫 연주자 유선주 씨가 옥천에 펼쳐나갈 공연이 기대된다.“옥천에 숨어 있는 지역예술인들이 곳곳에 계세요. 아마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앙상블 엘’로 활동하는 클라리넷 연주자 김연주 선생님도 친한데요. 지난번에 예술인지원사업에도 함께하면서 정말 잘해주셨고, 여러 도움을 주셨어요. 고마운 분이죠. 저랑 관련된 모든 분이 알려져서 잘 되시면 좋겠어요.”문의 : 010-7512-3952 (유선주)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4-04-11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