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버지를 고발한다 <효자고개 정재수의 아버지>
 선덕여왕
 2000-11-13 22:19:51  |   조회: 5272
첨부파일 : -
이 글은 살류쥬 2집에 나올 글입니다. 어떠신지? 옥천신문의 의견을 한수 듣고싶어----www.salluju.pe.kr
-------------------------------------------------------
< 이 아버지를 고발한다 >


효자고개 정재수군의 아버지

1974년 1월 22일 정재수군의 아버지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혹한에 초등학교 2학년인 어린 정재수군을 데리고 설을 세기 위해 부친 집에 가면서 추위에 못 이겨 술을 마시고 여러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눈보라치는 험준한 산고개를 넘다가 자신은 물론 어린 아들까지 얼어죽게 만들었다. 자신은 술을 먹었기에 잠들 듯이 죽었겠지만 이 어린 아들은 얼마나 춥고 고통스럽게 얼어죽었겠는가? 이에 대해 어른들이 통열한 비판과 반성을 하기 보다 이 어리석은 아버지의 죄를 덮어두기 위해 당시 언론과 사람들은 초등 2년 아들을 효자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래서 효자비까지 그 언덕에 세워두고 이런 어리석은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얼어죽을 것을 어린이들에게 장려하고 있다.
이 사건은 부권의 권위신장의 길이라면 딸을 팔아 눈을 뜨는 것도 장려될 만큼 철면피한 부권사회 아버지들의 강력하고 부패한 권력적 담함이 정재수 아버지의 용서할 수 없는 과실치사조차 효자를 둔 아버지로 둔갑시켜버린 웃기는 효이데올로기 유포사건이다.

초등 2년에게 아버지가 가자는 곳을 어떻게 안 따라갈 선택이 가능했겠는가? 또 그런 산 속에서 아버지 곁에 얼어죽는 것 외에 이 어린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어른으로서 아버지로서 아이보호의 책임을 방기하고 음주로 마취된 육체로 잘못된 판단능력으로 설제례 참여에 맹목되어 눈보라치는 산을 넘는 만용과 어리석음은 아버지로서 인간으로서 통렬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죄 많은 아버지는 지극한 효심으로 희생된 (?) 아들의 아버지로 오늘도 효자고개를 넘는 아버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제 이 아버지를 뒤늦게나마 살류쥬는 아들의 죽음을 유도한 살인자로 고발한다. 과실치사도 이정도면 매우 악랄하다. 이 아버지의 안중엔 아들의 생명과 안녕의 관심보다 자신의 추위와 설날의 제례참여밖엔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추위를 덜기 위해 술을 마셨고 기어코 산길을 넘으려 무리를 했다. 그런 원망스런 아버지가 죄는 고사하고 하루아침에 효자의 아버지로 둔갑되는 것을 지켜보며 하늘에서 재수 군은 덜덜 떨며 울었을 것이다. 원하지도 않은 효자보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어린이가 생기지 않기를 정재수 군은 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류쥬는 이 아버지를 고발한다. 어린이의 어떤 선행도 부모의 죄를 덮을 수 없다. 또한 아버지의 과실로 죽은 어린 희생자를 효자로 둔갑시킨 아버지들의 철면피한 태도도 철저히 비판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일에 어린 학생의 코묻은 돈을 걷어 비를 세운 처사는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아버지 되기 모임은 이런 사례들을 분석 검토하고 이런 어린이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위령제라도 지내줘야 하지 않을까, 옥천군도 해마다 이 어린 영혼의 위령제를 지내며 못난 아버지들의 자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재수군의 영령을 위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정재수 군 이야기--------
청산면 법화리. 일명 버구실에서 보은군 마로면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고개가 있다. 이 고개가 "효자고개"이고 고개 정상에는 「정재수 효자비」가 있다.

정재수가 경북 상주군 화서면 사산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다. 고향은 청산면 법화리이고 그의 조부모와 큰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며, 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상주군 화서면에 살고 있었다.

평소 어린이답지 않게 과묵하고 침착했으며, 예의 바른 어린이였다. 1974년 1월22일은 설을 하루 앞둔 섣달 그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연일 계속 내려 쌓였고, 폭설주의보가 내려 혹한이었다.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이는 날,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고향인 청산면 법화리 할아버지댁에 설을 세기 위하여 떠났다.

상주군 회북면에서 옥천군 청산면을 가자면 보은군 마로면을 거쳐서 효자고개를 넘어야만 하는데 길이 험준한 산고개 길이라서 걸어서 가야만 했다. 정재수 부자는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험한 산길을 혹독한 강추위와 싸워 가면서 걷고 있었다.

이윽고 화북면을 거쳐서 마로면에 왔을 때 눈보라는 더욱 기승을 부려 더이상 갈 수가 없어서 이들 부자는 어느 술집에 들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술집에서 정씨는 꽤 많은 술을 마셨고, 술에 많이 취한 정씨는 술기운에 추위도 모르고 오직 내일이 설이니 오늘밤에 꼭 고개를 넘어서 고향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여러사람의 만류도 뿌리치고 혹한과 눈보라 속을 뚫고 정재수 부자는 청산을 향하여 길을 떠나고 말았다. 길을 잃어 버리기를 몇 번, 눈이 무릎위까지 빠지는 산길을 술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밤이 꽤 깊어서야 고개마루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 정씨는 "이제 더 못 가겠다"하더니 푹 쓰러지고 마는게 아닌가!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 아버지!"부르면서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꼬마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재수 어린이는 술 취해 쓰러진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 주고, 극진히 보살폈지만 그 혹독한 추위 앞에서 그들은 동사하고 말았다.

이튿날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된 이들 부자의 시체는 차마 눈뜨고는 못볼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린 재수군이 아버지를 죽지 않게 하려고 애쓰다 자기도 죽게 된 그 상태가 너무도 역려했기 때문이다.

그후 정재수 어린이의 효행을 길이 교훈 삼고자 그리고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산마루 위에 「정재수 효자비」를 학생들의 정성으로 세워서 지금도 전하며 그후 이 고개를 "효자고개"라 부르고 있다.

< 옥천신문>

-------------------------------------------------------------------------
이 효자고개에 얽힌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고개에 얽힌 사연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소개됐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떠들썩했다. 때는 1974년 섣달 그믐날인 1월22일, 설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때마침 중부지방에는 폭설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경상북도 상주군 하서면 사산초교 2학년에 다니던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 정태희씨의 고향이자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법화리 복우실 마을에 설을 쇠러 아버지를 따라 상주에서 보은군 마로면을 거쳐 밤길을 재촉했다.

가던 도중 아버지는 어느 술집에 들러 술 한잔을 마셨고 그 술이 취한 가운데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에게 길을 재촉했으나 결국 효자고개를 넘지 못한 채 고개 정상 부근에서 눈발을 헤매다가 부자가 얼어죽고 말았으니 이튿날 이들 부자의 시신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얘기다. "잡은 닭 한마리를 보자기에 싸서 갖고 있었고 아버지의 양복 윗도리로 덮은 채 꼭 끌어안고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정재수 군의 아버지 정태희씨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 마을 육창수(58)씨가 다음날 눈밭 속에서 정재수 부자의 시신을 수습하며 느꼈던 안타까움을 다시 털어놓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안타까움을 가슴에 품고 정재수 효자의 효행이 난세까지라도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 효행의 시금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효자비와 효자고개를 재정비하는데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효자고개 주변의 농토에서 일을 하던 이 마을 주민들이 96년 봄쯤 상주시에서 정재수 효자비를 재정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곳으로 답사나온 일단의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시.군간 협의를 통해서라도 효자고개 및 효자비 재정비 계획은 하루빨리 추진되어야 한다는게 주민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주민들은 또 효자고개가 군도로 승격된 이상 확포장을 서둘러 보은쪽 6개 마을 4백50여 가구의 생활권을 청산으로 끌어들일 경우 면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또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방안으로도 꼽히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법화리 주민들만의 작은 숙원이 아니라 청산면 전체 주민들에 해당되는 커다란 숙원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옥천신문>
2000-11-13 22:19:5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사산초 2010-11-24 07:54:31 218.xxx.xxx.110
제가 사산초등학교 나왔구요 정재수군과 비슷한시기에 졸업했는데요
그때에도 이런 비판 많이 있었어요
그믐날 그것도 비바람이 몰아치는날 아이를 데리고 험한고개를 넘어가는게 정당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