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로 읽는 생활수필---겨울야곡
 땡초법우 조숙제
 2018-01-07 15:49:24  |   조회: 2670
겨울야곡
조숙제(옥천군 동이면 세산리)

목화송이 같은 눈이 펑펑 내리는 포근한 겨울밤이다. 마누라가 동치미에 고구마를 간식으로 내놓는다. 고구마만 보면 나는 눈물이 옷깃을 파고든다. 내 청춘의 아련했던 퇴색된 필름을 들여다본다.

사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겨울은 유독 추웠던 것으로 각인된다. 살림살이가 궁핍했기에 배는 늘 헐떡였고 옷은 남루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눈물겨운 사투였다. 그래도 젊은 청춘들은 용감했다. 늘 가슴엔 조그만 별을 품고 살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먹는 것 입는 것이 궁색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까지 초라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우리들의 현주소가 존재치 않았나 나는 생각한다.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인들의 자취를 돌아보아도 그 이야기는 입증된다. 예수님의 삶의 기록이 그러하였고, 부처님의 일대기도 면면이 무소유로 일관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을 하루 한 끼로 연명하고, 누더기로 일생을 길거리에서 마쳤다.

못난 놈들은 몸으로 부대끼면서 정을 확인한다. 추운 겨울일수록 허리를 ‘자동차 피스톤’처럼 움직였다. 낮에는 산에 나가 땔감을 준비하는 것이 유일한 일과요 대사였다. 산에서 모든 일이 일어났다. 담배도 산에서 어른들 모르게 피우면 맛이 죽인다. 유행가 가락도 산속에서 흥얼흥얼 홀로 배워야 제맛이 난다. 입담이 좋은 친구들이 산속에서 한바탕 펼치는 ’ 연애 이야기’ 속에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도낏자루 썩힌 일도 있다. 그래도 산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한결같이 대한다.

자연이 하는 일은 못되게 구는 사람이라고 해서 집중 공격을 하지 않는다. 햇볕과 공기도 적당히 미운 놈부터 제공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자라도 그를 ‘존재케 하는 도’가 엄연히 그들에게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은 약한 자라고 그들의 등불을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 다 썩은 고목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도이며 하늘의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헐벗은 수행자의 모습을 한 나목들을 보라. 그들은 오직 하늘을 향해 일심으로 기도문을 올릴 뿐,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풍파가 험할수록 한파가 매서울수록, 대지에 뿌리를 깊게 내려 매서운 향기의 꽃과 열매를 준비한다. 잘나고 못나고, 가지고 못 가지고의 잣대는 인간만이 즐기는 못된 분별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한계가 뻔하다. "진정한 앎의 경계는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알아야, 그 앎이 지극하다."고 ‘장자’는 우리에게 간곡히 권한다.


이렇듯 청춘을 흙과 산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는 ‘자연의 모태’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삶을 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주워진 환경에 자족할 수 있는 세대는 ‘못할 일’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동맥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한세월을 보냈다.

낮의 고된 ‘땔감 준비’의 노동은 저녁이면 말끔히 사라진다. 멀건 시래기죽으로 곡기를 때우고, 우리는 하나둘 밤이면 사랑방으로 모인다. 사랑방은 젊은 청춘들의 '해우소'다. 모든 일이 그곳에서 모의된다. 동네일이며 신상이 다 털린다. 누군 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가도 파악되며, 생일이 언제고 제사가 언제인가는 기본 메뉴다. 동네 사람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화투는 기본이고 윷놀이, 팽이 만들기, 새끼 꼬기, 내년의 농사 준비며 농협에 가서 돈 빌리는 비법도 다 그곳에서 발원한다.


어느 달빛 푸른 보름밤이었을 것이다. 보름밤엔 밥을 훔쳐 먹는 전례가 있었다. 화투치기에서 꼴찌 두 명이 갔다 오기로 했다. 당연히 꼴찌는 나와 친구에게 배당이 됐다. 나는 긴장을 했다. 궁리 끝에 동내 최고 부잣집으로 가기로 했다. 대지는 살을 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부엌까지는 잠입하는 데 성공을 했다. 솥뚜껑을 열고 보니 하얀 쌀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릇에 담아 대문을 나서려는 데 우레 같은 고함이 천둥을 쳤다. “도둑이다. 잡아라.” 나는 전신을 다 해 줄행랑을 쳤다.

친구는 잽싸게 숨었다. 아저씨는 나만 보고 달려들었다. 아저씨의 키는 장대 같았고 몸집은 ‘항우 장상‘이었다. 나는 산길 들길로 넘어지고 범벅이 되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뛰었다. 한계는 거기가 끝이다. 입술이 터진 데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다. 눈덩이가 멍이 들었다. 나를 도와주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은 빙그레 비웃었다.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선 아픈 생각은 잊어버리고 하얀 쌀밥만이 밤새도록 머릿속에 빙빙 거리며 날아다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가 그 하얀 쌀밥을 맛있게 친구들하고 먹었다면, 꽃보다 아름다운 아린 추억으로 장식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컷 얻어맞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울었던 겨울밤이었다. 노루처럼 휘젓고 다녔던 아픈 추억이지만 지금 와 생각하니 보석같이 빛나는 추억이 꽃보다 아름다운 향기로 남아있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마누라가 차려준 간식 고구마를 먹으면서 옛 향기에 취해 보는 겨울밤이다. 그 시린 겨울이 없었다면 무엇으로 내 ‘삶의 강줄기’가 스스로 깊어 갈 수 있었겠는가? 빙그레 웃으며 자문해 보는 겨울밤이다.

감사합니다.
2018-01-07 15: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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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8-01-26 18:45:51 211.xxx.xxx.98
가슴저리도록 뼈아픈 사건을 사건이 아닌 보석같이 빛나는 추억으로 삶의 강줄기로 삼으시고 글도 쓰시고 생활하시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빛나는 추억 많이 나누어 주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독자 2018-01-11 14:40:30 112.xxx.xxx.220
겨울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속 좋은 글 올려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