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당하는
시위
군중들(무등고시학원
앞)
진압당하는
자유롭게 다니는 사람들... 그 사이 시민군도 보이고
진압당하는
광주시민과 함께 부상자를 옮기는 외국인
매일같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버스 위에 올라 근접하게 접근한 시민들과 군인들
시민은 도청으로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민들을 모으는 시민군
버스 위에 올라 근접하게 접근한 시민들과 군인들
아주머니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식사하는 시민군
진압당하는
군, 장갑차를 동원. 시위대 제압 돌입
도청 앞은 물론, 도청 지붕까지 메운 시민들
비닐에 싸여 옮겨지는 시신 희생자의 눈을 감겨주는 시민
도청 마당에 널려있는 기관총과 무기들 도청 마당에 널려있는 기관총과 무기들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며 한 손에는 캔을 든 시민군
간단하게 염을 한 채 한곳에 모아진 희생자들 무기를 배급받는 시민들
시민군이 무장한 모습
군용 지프차를 타고 이동중인 시민군
무장한 채 트럭과 탱크로 이동하는 시민군 행렬
도청 곳곳에서 시민들 시체를 모아오고
군인들을 태우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갑차
살아있음에도 목을 밟히며 손목의 끈을...
군인과 마주 선 아이 도청 진압 다음날, 도청에 남은 시체들
검거되어 끌려오는 시민들과 취재기자들
모래진지를 설치하고 경계하는 군인들
군인들에게 검거되는 두 중년 소탕전으로 검거되는 광주의 젊은이들
시가전에서 검거되어 개머리판에 맞는 젊은이들
민주화의 열망이 흘러넘쳤던 지난 80년 광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직
사진기자에 의해 22년만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중앙일간지 사진기자로 광주를 누볐던 김인곤(51.사업)
씨는 최근 자신이 광주 현장에서 찍었던 120컷에 달하는 역사의 현장을 인터넷에 띄웠다.
이 사진들은 군 당국의 정치적 개입으로 당시 왜곡돼 신문에 실리는 것을 참다
못한 김씨가 훗날을 기약하며 숨겨놨던 것이다.
전 중앙일간지 김인곤 기자의 辯
전쟁이란 전략과 전투로 이루어집니다.
말단 소총수의 역할은 전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말단 소총수는 그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는 수뇌부에서는 전략상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질 것이 뻔한...
아니 반드시 져야하는 전투를 지시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미끼로 사용되는 전투라는 사실을 알았건 그렇지 못했건 간에 말단
소총수는 전투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을 지키는 사진기자 는 대규모 전쟁에 동원된 말단 소총수와 비슷합니다.
사진거리가 발생하는 현장을 쫓아다니는 사진기자는 그래서 대형사건의 전말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적으로 극심하게 쫓기는 경우 역시 사진기자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무슨
사건에 관한 현장인지, 신문이 나온 다음 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광주에 있던 20여 년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 .
열흘 동안 일어났던 그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말단 소총수였고, 그 이후로는 자의 반, 타의 반을 핑계로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사진기자가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담았던 순간들이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역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
역사들을 이제야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입니다.
전쟁을 평가하는 것은 말단소총수의 역할도 아니고, 또 그럴 능력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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