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자르고 불지르면 참 신앙인?
 진정한 신자가~
 2000-11-14 10:01:53  |   조회: 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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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을 보고 나의 어린 신자 시절을 떠올렸다
[오마이뉴스-김영균 기자 ernesto-gevara@hanmail.net]

올해 5월 부산대학교 대동제때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당시 총학생회에서는 행사의 일환으로 '장승깎기'를 준비했었다. 통나무에 그려진대로 학생들이 직접 한 번씩 깎아 완성함으로써, 단결된 힘을 모은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그러나 행사 기획부터 격렬한 기독교 학생회의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누군가에 의해 불태워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정문 옆에 세워져 있지만 이미 하나됨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나는 집 근처의 교회를 다녔다. 매주 토, 일요일을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했다. 고3때도, 나는 주말에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 믿음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아주 엄한 개신교 교단이었다. 안식일인 일요일에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참 민감할 때인 우리 또래들은, 주일날 교회를 올 때 버스를 타야 하는지 타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토론해야만 했다. 주일날 돈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일'로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주일을 내내 과자 한 봉지 못 사먹으며 지내야 했다. 볼펜 한 자루도 사지 못했다.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주머니 속의 내 손은 항상 갈등하며 동전을 짤랑거렸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우스운 '교조주의'였다. 내가 교리에 얽매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

22일 밤 PD수첩을 보면서, 어린 시절 그 갈등의 짤랑거림을 기억해냈다. 초등학교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장승 건립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시위를 통해 '맹목적인 교리의 인간들'을 보았고 어린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교리에 충실하려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은 대부분이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도 계율을 지키지 않는 종교인이야 말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열정도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다. 더욱 그것이 타 문화 숭배 대상의 목을 자르거나 불태우는 테러로 비화되는 것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

'우상숭배 거부'를 이유로 단군상과 장승에 해를 입히는 것은 케케묵은 '계율'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버리는 행위와 같다. 그런 행위가 인간 사회에 얼마만큼의 불신을 가져다 주는지는 앞선 중세 시대를 통해 증명되었음에도, 어리석음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한 가지 믿음만을 강조하며 오랜 민족 문화인 단군을, 조왕신을, 칠성을, 삼신 할미를 몰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우상 숭배 거부인지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예수는 신약 시대를 열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최후의 새 계명을 주었다고 한다. 예수가 얼마나 율법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도 성경에 나온다. 예수를 좇던 제자 하나가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길 옆의 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벼 먹었다. 이를 본 율법주의자들이 예수를 비난하자, 예수는 도리어 그들을 꾸짖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려고 바둥거리지 말아야 한다. 신도들 앞에서 '내가 단군의 목을 잘랐노라'며 자랑하는 목사에게 남는 것은 '우쭐댐'과 '자만심'밖에 없다. 자신의 영웅담을 이야기함으로써, '나는 이만큼 신앙심이 깊다'는 목사에게서 더 이상 사랑과 믿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세상에도 살아있는 신들을 본다. 97년 노동법 개악 때, 차가운 길바닥에 노동자들과 함께 꿇어앉은 목사님과 수녀들, 스님들이 바로 살아있는 예수이며, 마리아이며 부처들이다. 종교간의 차이를 의미없어 하며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젊은이들이 바로 고결한 신앙인들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방관한 죄를 반성하는 교황의 모습이 바로 참다운 종교인이다.

진정한 우상숭배 거부를 원한다면, 우리 사회에 널린 '보이지 않는 우상'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되는 우상은 단군 이나 장승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예수가 세상에서 사랑하라는 계명을 전한 지 2000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진정한 예수의 제자들은 어디로 가고 세상에 율법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는가.
2000-11-14 10: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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