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영기자의 반박글
 퍼미
 2003-02-12 17:48:02  |   조회: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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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배진영 기자가 조갑제 편집장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반박문 전문이다.

[도올 기자, 그건 아닙니다]

- 실망, 황당, 분노, 허탈 -

기자가 김용옥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86년 4월 신문지상을 통해서였다. 그때 그는 5공 시절 민주화 투쟁의 와중에서 흑백논리만이 판을 치는 대학가의 풍조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고 고려大 교수 자리를 던져버렸었다.

그때 받은 신선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그후 도올 김용옥이 원광대 한의대에 입학하거나, TV방송을 통해 기존의 해석과는 다르게 孔子나 老子를 강의하는 등 「튀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에도 기자는 비교적 그를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었다. 그가 몇 달 전 돌연 문화일보 記者로 변신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철학자」 김용옥의 말과 행동이야 기자가 뭐라고 할 바 못되지만, 「記者」 김용옥의 기사(?)는 참 실망스러웠다. 「記者」의 글에 「사실」보다는 「주장」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문득 기자의 초년병 시절(그래봐야 그다지 오래 전 일도 아니지만), 한 선배 기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記者는 글자 그대로 「쓰는 놈」이라는 뜻이다. 요즘 직업 가운데 「놈 자」字를 쓰는 직업이 몇이나 있나? 記者는 그만큼 비천한 직업이다. 기자는 늘 아래로 내려가서 사실을 취재해서 쓰는 직업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직업이다. 기자는 「기사」를 통해 「사실」과 「남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기자에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社說이나 칼럼 등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요즘에는 신문이나 잡지의 인터넷版의 「기자코너(月刊朝鮮의 경우 「기자클럽」)나 E-메일 통신 등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가 더욱 넓어졌다. 그러나 적어도 「기사」속에 「자기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記者」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도올 김용옥 기자의 기사에 대해 실망을 키워가고 있던 차에 접한 2월10일字 문화일보에 실린 도올의 글『언론은 「民族自決」에 눈떠라』는 단순히 실망을 넘어 황당함과 분노, 그리고 허탈함마저 느끼게 했다.

「철학자 기자」의 글에 「논리」도, 「사실」도 없었기 때문에 황당했다. 사실을 왜곡하면서 不法과 不義를 덮으려는 그의 詭辯(궤변)과 國籍(국적)없는 의식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기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知性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데 대해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자 기자」의 글에「논리」도 「사실」도 없어 -

첫째, 4억 달러 對北 送金說에 대한 도올 記者의 주장을 보자.

『우리는 우선 對北 送金 4억 달러의 최초의 發說者가 국내 政街의 인물이 아닌 미국의회조사국 연구원, 래리 닉시라는 미국인이었다는 사실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단순한 사실은 발설자의 배후조종세력들이 남북간 경제협력의 직접적 대화채널을 달갑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立證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혹의 제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올의 글에는 4억 달러 對北 送金說의 최초 발설자인 미국의회조사국 연구원 래리 닉시의 배후에 남북간 경제협력의 직접적 대화채널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의혹을 「立證」할 만한 논리적 연결고리나, 사실의 뒷받침이 없다.

단순히 「의혹의 제기」를 넘어 「立證」이라는 말을 자신있게 쓰려면 최소한의 논리적 연결고리나, 사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철학자」의 글에 「논리」가 없고, 「記者」의 글에 「사실」이 없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특검제를 도입하여 對北송금의 진상을 밝힌다고 하는 것은 바로 1989년 1월 평양의정서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 8월에 조인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에 구축된 현대아산의 對北경제채널을 궤멸시키려는 국제적 음모의 일환으로 간주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라고 한 도올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도올 기자는 먼저 그가 말하는 「국제적 음모」를 획책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지금 특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언론과 야당, 多數의 시민들, 그리고 특검제 검토를 요구했던 여당 내 일부 인사들이 「현대아산의 對北경제채널을 궤멸시키려는 국제적 음모」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 休戰협정에 대한 도올의 무지 -

둘째, 도올 기자는 『休戰협정이 본시 남한이 배제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군사적·정치적 차원에서는 남한이 미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기가 法理的으로나 실리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休戰협정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국가」간에 체결된 것이 아니라, 「유엔軍」과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交戰집단」간에 체결된 것이다. 休戰협정에 서명한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美육군대장은 「미국」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 아니라, 「유엔軍」이라는 交戰 집단을 대표하여 서명한 것이다.

따라서 「法理的」으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美軍 大將이라는 이유로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적·정치적 차원의 대화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美軍이 아니라 영국군이나 이디오피아군 장성이었다면, 영국이나 이디오피아가 한반도의 군사적·정치적 차원의 대화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가?

마찬가지 이유에서 대한민국 대표가 休戰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休戰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배제되어야 한다거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1953년 休戰협정 체결 당시 休戰협정에 참가한 국군 대표가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킬 수도 있는 休戰협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하지만 한국군은 유엔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을 치뤘다. 따라서 유엔군 사령관이 서명한 休戰협정은 法理的으로나 실질적으로 한국군도 羈束(기속)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한국군은 지난 50년간 休戰협정체제를 (큰 틀에서는) 준수해 왔다.

실리적(실제적?)으로도 도올의 주장은 史實과 다르다. 「休戰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치회담의 개최」를 규정한 休戰정에 따라 1954년 6월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한국대표가 참석한 前例가 있기 때문이다.

- 對蘇 경협차관 30억불을 날렸다고? -

셋째, 도올 기자가 『 러시아에게 30억불을 날린 사실은 함구불언하면서』운운한 것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과 舊소련이 修交하는 과정에서 經協차관 제공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에 따라 1991년 1월22일 한국이 소련에 경제협력차관 3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

그해 5∼11월 소비재 차관 4억7000만 달러와 은행차관 10억 달러가 제공됐다. 특히 소비재 차관 4억7000만 달러는 그 用處가 한국 物品의 구매로 한정되어 제공되었으며, 그 덕분에 초기 우리나라 기업과 상품들이 舊소련 시장에 진출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나머지 15억 3000만 달러는 1991년말 소련이 해체되면서 집행되지 않았다.

그후 우리나라는 舊소련의 對外채무를 계승한 러시아로부터 그동안 戰車·장갑차·헬기 등 防産물자 2억1000만 달러와 알루미늄·우라늄 9000만 달러 등 3억7000만 달러를 현물로 변제받았다. 2001년말 현재 이자를 포함해 19억5000만 달러의 미수금이 남아있다. 현재 차관의 상환방법과 기일 등을 놓고 양국간에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이 경협차관을 상환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듯 「러시아에게 30억불을 날린」운운하는 것도 사실과 다르거니와, 그에 대해 「함구불언하면서」운운하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그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리나라 언론들이나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심심찮게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 북쪽 동포에게 2235억원을 송금했다고 야단법석? -

본래 도올 기자의 글 가운데 사실과 다른 것만을 지적하고자 했으나, 아무래도 그의 주장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해야겠다.

도올 기자는 자뭇 비분강개하여 외친다.

『로또복권 판돈으로 순식간에 2600억원을 거는 광란의 축제를 서슴치 않는 愚衆(우중)이 한편으로는 북쪽 동포에게 2235억원을 송금했다고 성토하는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고….

과연 그럴까? 기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북쪽 동포」에게 돈이나 물자가 흘러 들어가는데 대해 성토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성토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북쪽 동포들에게 2235억원을 송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돈이 북쪽 동포가 아닌 金正日에게 흘러 들어갔으리라는 의혹, 그리고 그 과정에서 DJ 스스로 시인했고, 언론의 보도를 통해 파헤쳐지고 있듯이 「超法的」이라는 美名 아래 온갖 불법과 편법이 자행됐기 때문이다 (이왕 도올 기자 스스로 『2235억원이 「북쪽 동포」에게 송금했다』고 했으니,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를 제시해 준다면 의혹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이게 진정 「記者」의 말인가? -

도올 기자는 다시 외친다.

『민주? 좋다! 그러나 그것이 우매한 多數의 폭력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항거되어야 할 僞善이다. 언론의 자유? 좋다! 그러나 그것이 그 자유를 獨占하는 少數의 전횡이라면 그것처럼 무서운 마약은 없다. 도대체 이 나라의 언론은 몇 놈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IMF 換亂(환란)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國策은행인 산업은행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특정기업에 특혜 대출을 했다. 금융실명제법과 외환관리법,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해 가면서 그 돈이 북한으로 송금됐고, 그 과정에 국가정보원이 개입됐다. 게다가 대통령은 그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애매모호한 말로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

북한에 거액의 달러가 송금된 직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회담의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기 때문에 북한으로 간 돈은 남북정상회담을 열기 위해 金正日에게 준 뇌물이었고,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한 밑밥이었으리라는 의혹은 잠시 접어두자.

당장 눈에 보이는 불법들만 해도 하나 둘이 아닌데, 그런 불법이 자행된 경위를 밝히고 책임을 묻자는 것이 어째서 「우매한 多數의 폭력」이고, 「항거되어야 할 僞善」인가?

오히려 그런 말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왜곡하고 윽박지르는 것이야말로 「오만한 먹물의 폭력」이고,「항거되어야 할 僞善」아닌가? 특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多數 국민들의 여론을 간단하게 「우매한 多數의 폭력」으로 규정하는 그 오만방자함 앞에는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정권이 한사코 감추려 들고, 일부 지식인과 언론마저 그러한 사실은폐 행위를 한사코 비호하고 있는 가운데, 진실을 밝혀내려는 언론의 노력이「언론의 자유를 독점하는 少數의 전횡」이고 「마약」이라니?
지금 「전횡」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자들은 따로 있다. 진실을 은폐하고,「통치행위」운운해 가며, 통치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司法府의 權能마저 서슴없이 침해하는 「현존」권력과 「차기」권력이 바로 그들이다.

- 인간이 투명하지 못하기에 권력은 감시받아야 한다 -

불법이 자행된 진실을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 도올 기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투명성? 좋다! 국가의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至高의 진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至高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 놈들 중 과연 몇 놈이나 자신의 투명한 인생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투명하게만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場이라고 하는 단순한 문학적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과연 국가에 대해 투명이라는 논리만으로 안일하게 논설이나 긁고 앉아있을 수 있으련가?』

그의 말처럼 「국가의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至高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 놈들」 가운데 「자신의 투명한 인생을 고백할 수 있는 놈」은 몇이나 될까? 그들뿐 아니라 뭇 인간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이 투명성을 결여했다고 해서 「국가기관」의 불투명한 행위를 따지는 것을 보류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처럼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總合이 국가와 사회이고,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대통령도 나오고, 공무원들도 선발되는 것이기에, 더더욱 투명성이 요구되고, 권력에 대한 감시가 요구되는 것이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들이 三權分立을 규정하고, 「언론의 자유」를 특별히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도올 기자는 「개인도 인생도 투명하지 못한 것이니까, 권력의 투명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도 입다물고 있으라」는 식의 논리를 구사한다.

- 혼돈을 가중시키는 것은 진실의 은폐아다 -

그래도 도올 기자는 외친다.

『정보의 공개? 좋다! CIA나 FBI의 암살, 전복, 은폐, 왜곡의 모든 음모가 언제 한번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그네들은 공작의 문서조차 다 폐기처분해 버린다는데, 왜 열강의 첨예한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이 혼돈의 도가니, 우리나라만 정보를 다 공개해야 한다는 것인가? 정보는 공개해야 할 성질의 것이 있고, 공개되어서는 아니 될 성질의 것이 있다는 것은 만방의 상식이요, 우리 인생의 상궤다』

도올 기자는 햇볕정책은 「남북간의 경협을 통한 대화채널을 확보하려는 노력」이었고, 현대의 對北사업은 「북한 사회를 외국자본의 횡포로부터 막는 민족주체의 기틀을 의미하는 것」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건 「민족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런 「민족적 쾌거」가 도올 記者가 「제국주의자」라고 지칭한 미국의 정보기관들의 암살·전복·은폐·왜곡과 同列에서 비교되어야 하나? 그리고 그런 공작들이 은폐되니까 對北 송금의 진실도 묻어둬야 한다는 논리는 또 어디서 나오나?

우리나라가 「열강의 첨예한 이해가 대립하고 있는 혼돈의 도가니」라고?

하지만 정부나 기업의 불투명한 행위, 그리고 진실의 은폐는 혼돈을 가중시킬 뿐이다. 설사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留保될 필요가 있다해도 그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정보공개의 유보」가 不法의 은폐수단으로 惡用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기자가 아는 「만방의 상식」이고, 「우리 인생의 상궤」다.

「정보는 공개해야 할 성질의 것이 있고, 공개되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마지막 순간에 기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혹은 법규에 의해, 정보의 공개를 유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리부터 그런 말로 자신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記者」가 있다면, 그는 이미 「記者」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國情院이나 機務司 공보관 자리나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정보를 다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그렇게 말한 사람도 없거니와, 이것도 「記者」가 할 걱정은 아니다. 그리고「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군사기밀보호법」 등에 그에 대한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으니 도올 기자께서는 과히 걱정 마시길….

- 법치주의야말로 국가운영의 기본싱식 -

도올 기자의 말에 반박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지만, 여태까지 한 얘기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法治主義」의 원칙대로 하자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의 주장 밑바닥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통일」을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로 큰일날 얘기다.

어떤 법률이나 정책도 헌법을 넘어설 수는 없고, 그 어떤 정책도 헌법과 법률을 넘어설 수는 없다. 이게 법치주의다. 법치주의야말로 「국가운영의 너무나도 기본적인 상식」이다.

만일 민족통일을 위해 법치주의의 원칙을 유보할 수 있다면, 정치개혁을 위해, 언론개혁을 위해, 경제개혁을 위해,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부패척결을 위해 등등 온갖 명분으로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2000년 총선 당시에는 총선연대의 불법행위를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서 비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법치주의가 파괴되었을 때, 그 궁극적인 희생자는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시 인간과 우주의 영원한 哲理에 관심을 갖고 살았던」 도올 기자에게는 그런 일들이 하찮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시 인간과 우주의 영원한 哲理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다만 내가 하루하루의 삶을 엮어나가고 있는 이 나라, 이 사회의 현실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온」 기자로서는 이 나라를 위해, 이 사회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햇볕정책·현대의 對北사업에 대한 도올 기자의 평가 비판-

햇볕정책이나 현대의 對北사업에 대한 도올 기자의 평가에 대해서는 일일이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비판해 보기로 한다.

도올 기자의 말대로라면 그토록 중차대한 사명을 수행해야 할 현대아산이나 현대상선이 무슨 이유에선지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버렸다. 産銀에서 편법특혜대출를 해 줬고, 관광공사도 「민족의 제단에 바치는 심정」으로 거액을 지원했는데도, 회사가 그렇게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졌다면」, 도대체 왜 그렇게 됐는지 밝혀내고, 책임자들을 솎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권과의 癒着(유착)이나 부정비리가 있었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난 연후에 그 중차대한 민족적 사업의 계속을 위해 지원을 하든지, 회사를 정리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도올 기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우리나라가 세계분쟁지역 리스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지는 작년 6월 서해에서 산화한 여섯 명의 장병들에게 확인해보기 바란다.

도올 기자는 남북간의 陸路 개통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세기적 사건일 수 있다』면서 『이러한 희망찬 신세계의 교향곡을 음모와 기만의 어두운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비굴한 듯이 어슬렁 걸어가고 있는 이 암울한 정황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따진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누가」 만든 것인지는 안다. 바로 對北뒷거래 의혹의 원인행위를 제공한 現정권과 현대, 그리고 진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음에도 한사코 진상을 덮으려 드는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도올 기자는 『새로 출범할 신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어 대외 정치적 역량을 축소시키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유리한 짓일까?』라고 묻는다.
이 역시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몰라도,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안다. 이미 몇 달 전 국회에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국민들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통치행위」운운하고 나선 차기 정권의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와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 식으로 의혹을 덮어버리자고 나서니, 누구라도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한 마디로 自繩自縛(자승자박)인 셈이다.

- 글을 마치며 -

글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더 얘기하고 싶다.

우선 도올 기자께서는 말을 좀 곱게 해 주셨으면 한다. 「도대체 이 나라의 언론은 몇 놈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가?」,「그런 지고의 진리를 말하고 있는 놈들 중 과연 몇 놈이나 자신의 투명한 인생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라든가, 「철없는 승냥이 새끼들의 싸움」이니 하는 말들이 과연 「인간과 우주의 영원한 哲理에 관심을 두고 살았던 사람」이 할 소린가?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언론 사상 그런 험한 말들을 거침없이 신문지면에 토해낸 기자는 도올 기자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인간과 우주의 영원한 哲理」는 그만두고, 내 이웃, 내 가족에게 조금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험한 표현을 신문지상에 마구 토해내지는 않을 것이다.

도올 기자는 외친다.

『나 도올의 관심은 與도 아니요, 野도 아니다. 北도 아니요, 南도 아니다』라고.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그 사람이다. 보불전쟁으로 프랑스를 굴복시켰던 독일의 빌헬름 1세가 파스퇴르에게 그의 과학적 업적을 기려 賞을 수여하겠다고 했을 때, 파스퇴르는 이런 말로 거절했다.
『과학에는 조국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지식인을 보고 싶다.
『지식에는 조국이 없어도, 지식인에게는 조국이 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그 조국은 바로 대한민국이다』라고.

2003/02/12 오후 4:07:
2003-02-12 17:48:02
61.xxx.xxx.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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