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위을 도웁시다!*진정서 참여건
 살류쥬
 2000-11-14 09:38:06  |   조회: 5429
첨부파일 : -
살류쥬(q17@chollian.net)
홈페이지 http://www.salluju.pe.kr

제 목 김경위 선처를 위한 진정서


김경위는 직장에서까지 남편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폭력과 의처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성에게 불리한 온갖 관행을 딛고 파출소장까지 이른 여성입니다. 이 여성이 딸의 분노를 산 것은 딸에게 내제된 불평등한 가부장제 윤리관 때문이며 딸은 일하는 여성,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부장제의 대리인으로서 어머니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켰습니다,

모든 간통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이 여성은 딸의 고발로 인해 사법부의 판단 없이도 이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이 여성이 어렵게 쌓은 경력을 그 딸과 가족이 짓밟는 폭력을 보며 그토록 자신을 지키려 애썼던 이 여성의 명예와 자긍심이 통절히 피흘리는 모습을 피눈물의 심정으로 바라봅니다. .

이혼의 선택도 결혼의 선택도 본질적으로는 개인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은 남성보다 훨씬 더많은 윤리적 책임과 도덕성을 과도히 요구당하고 있습니다. 왜 이 여성은 자신이 더이상 견디기 힘든 가정을 나와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는 죄로 어렵게 일궈 온 일자리마저 빼앗기고 사회적 매장을 당해야 하는지요? 가부장제가 아직도 창궐하는 한국에 살기에? 이혼해주지 않고 매장시키는 독한 남편과 어머니를 자신의 평생보호자로만 아는 딸을 가졌기에? 만약 은진이의 글이 아니라면, 만약 사문화되어야할 간통죄가 없었다면 , 남편이 이혼을 해주었다면 , 딸이 어머니를 자신의 행복권을 가진 한 인간으로 인정할였다면,김경위는 이런 수치와 불행을 당하지 않고 훌륭한 경찰로서 국가와 사회에 헌신했을 것입니다 .

현직 경찰로서 이혼전에 다른 남성과 현행법이 금하는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당연히 죄의 댓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김경위는 이미 95년부터 이혼을 결심했고 남편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다 집을 나가기 전에 24일 이혼하기로 합의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부부관계가 끝난 상황으로 다른 판례를 보아 간통죄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의 견해 입니다. 또한 결혼에 이른 과정과 삶의 과정을 살펴볼 때 김경위의 의도가 결코 간악하거나 쾌락추구가 아니라는 것을 참작하시어 불행한 이 여성이 이제나마 새 삶을 살고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부디 선처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00년 8월 9일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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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김경위의 선처를 바라는 서명운동 전개
살류쥬는 8일 14시 동인회의를 통해 그간의 결과를 점검하고
김경위구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명서를 첨부한 진정서를 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간통죄 폐지는 멀리 있습니다. 우선은 김경위가 불행한 상황에 있었음을 알려내어 재판부에 여론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다른 사건의 서명도 살류쥬가 현재 171건을 받아 경찰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비록 미약하나 힘겨운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의 구명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서명의 방법은 기술문제로 약간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서명은
김경위에게 힘을 주고 가부장제의 마녀사냥에 희생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서명해주실 분은 q17@chollian.net 로 메일을 주십시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를 써주시면 됩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은 다른 게시판에 퍼날라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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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김경위 진술서 전문

친딸에게 공개 고발당한 여자의 진술서


20년 동안 곱게 키워온 친딸에게 공개고발까지 당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공인으로서 도의적으로 물의를 야기한데
대하여 석고대죄를 하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자숙하고 있었으며
물의 야기에 대한 수습을 위해 수 차례에 거쳐 남편을 만나기를
시도하였으나 고소한 남편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으로
찾아가면 대문도 열어주지 않고 교묘하게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딸을 앞세워 허위로 경찰조서나 인터넷에 올려 저를 공격하였지
만, 저는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행여 딸이 마음의 상처라도 입
을까 두려워 대응을 하지 않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나 평소 아껴
주신 분들의 "너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냥 당하지만 말고 최소
한의 방어는 하여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가 있었고 이제는 한 가
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으므로 피를 토
하는 심정으로 제가 결혼하게된 동기와 불행했던 결혼생활 그리
고 이번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와 남편은 제가 고3때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이었으나 학교에서 다른 여
학생과의 좋지 않은 소문으로 인하여 2학기 중간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 이삿짐을 옮겨 주다가 강제로 성관계를 맺
게 되었고 제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여수에서 근무를 하
는 동안 매주 여수로 찾아와서 만나게 되었고 80년 3월 딸을 임
신하게 되자 아들 하나를 둔 이혼남인줄 알면서도 혼인신고를 하
고 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80년 가을쯤
남편이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여교사와 내연의 관계를 가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판단됩니다. 퇴근을 10분만 늦게 해도 어디서 어
느 놈과 놀다 왔냐고 시비를 걸어 폭행하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예를 들어보면 밥상을 차리다가 반찬그릇을 소리나게 상에 논다
는 이유) 폭행을 하는 등 집안에서의 폭행은 다반사이고 심지어
는 저의 직장인 경찰서 앞에서 저의 동료들이 보는 가운데 89년
무안경찰서앞, 93년 광주남부경찰서앞, 99년 5월에는 광주동부경
찰서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99년 추석때는 영광 친정에
서 친정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저를 폭행하다 저의 부모
와 형제들에게 혼난 뒤 다시는 폭행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하였으
나 그 이후로도 수시로 폭행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자기기분이나
쁠 때는 주위에 누가 있든 없든 의식하지 않고 폭행을 하고 이
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여자는 80년 3월 저와 혼인신고를 할 당시부터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여교사와 86년 9월까지 내연의 관계에 있
었으며(그녀의 남편이 교육청에 가정파괴범이라고 진정서를 제출
하여 파면처분을 하려고 조사하였으나 제가 장학사 및 여교사의
남편과 그 부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어서 감봉 3월의 경징계를 받
았고 다른 학교로 전출됨), 87년에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아가씨
와 불륜관계를 맺다 저에게 들킨 적이 있으며, 89년 무안현경
고등학교에 재직 시에는 제자인 여고생과의 추문으로 당시 모 기
자에게 들켜 500만원을 갈취 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저의 명의로(남편의 명의로는 이미 대부를 받은
상태였음)연금대부를 받아 5년간 상환한 사실이 있으며, 95년부
터 97년까지 진도 조도실고 근무 시에는 한달씩 집에 다녀가지
를 않아 확인해 보면 섬에서는 나와 집에는 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다른 여자가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특별히 같이 어울릴만한 친구가 없었기 때
문입니다.

시댁의 가족사항으로는 시부모님, 시누이 1명, 시동생 2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혼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시동
생 2명은 저희가 대학등록금 및 용돈까지 주면서 졸업시켰으나
직장을 잡지 못하고 백수로 지내고 있어 가게를 차려주고 결혼까
지 시켜 주었습니다만 경제적 자립심이 없었고 저희가 경제적 지
원을 끊어 버리자 성실하게 노력은 하지않고 쉽게 돈을 벌기 위
해 범죄행위를(98년도에 부녀자를 상대로 금품갈취를 하다 큰 동
생이 먼저 구속되었고 일주일 뒤 막내 동생도 유사한 사건으로
구속됨) 저질렀습니다. 이들이 구속될 때마다 제가 나서서 해결
을 해야 했으며, 합의금은 물론이고 변호사비용까지 모두 저희
가 부담을 해야 했으며 이들이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고 난 뒤인
2000년 2월에도 또 다시 금전을 요청하여 200만원을 송금해준 사
실이 있습니다.

집안의 경제문제는 애초에는 제가 맡았으나 남편이 돈을 어디
로 빼돌리는지 자꾸 의심을 하고 뒷조사를 하였기 때문에 남편에
게 돌려주었다가 98년 시동생 2명의 합의금과 변호사 비용 등으
로 당시 통장에 있던 돈 3천만원 가량을 전부 써버린 후 저에게
통장을 돌려주어 제가 다시 경제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 부모님에게 처음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조차 부모
님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니까(이때까지 부모님은 아
들이 있는 이혼남인줄 몰랐음) 부모님에게 화를 내고 자리를 박
차고 나갔으며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남편은 살림을 차린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못하게 하였고, 저는 이에 대한 죄책감으
로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으며, 특히 저의 딸 때
문에 참고 살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가 너무 힘들었고 어쩔 때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으므로
저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5년부터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96년 경위로 승
진하면서부터 현재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생활하
였으나 남편의 의처증 때문에 마음놓고 직장일도 할 수 없었으므
로 이혼의사를 굳히고 딸이 대학생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99년 딸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이혼의사를 남편에게 적극적으
로 얘기했으나 남편은 안된다고만 얘기 할 뿐 꿈쩍도 하지 않더
니 99년 5월 초순경 점심시간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
희 경찰서 앞에서 다수의 시민과 저의 직장동료들이 보는 가운데
폭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더욱 이혼을 하고자 처음으로 4일간
가출을 하였습니다.
저는 가출을 하면 이혼에 동의를 해줄 줄 알았으나 남편은 이
혼은 절대 안된다고 하며 지금부터 너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아라
고 하며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고 저는 내 마음은 당신에게서 이
미 떠났으므로 당신 옆에 있는 것은 나의 빈껍데기인데 그래도
좋다면 살기는 하겠다고 하여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였으나 이
후에도 계속 폭력을 행사하면서 저의 모든 행동을 간섭하며 구속
하려 하였습니다.
저는 가정에서는 삶의 의미가 전혀 없었고 폭력으로부터 피난
처이며 인생의 유일한 희망인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돌파구인
경감승진시험에 합격을 해야 했기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며 최
선을 다하였으나 2000년 1월 승진시험에 떨어지자 남편은 위로
한마디 없었으며 오히려 잘 떨어졌다고 비난하였습니다.
2000년 2월 9일 시험에 떨어진 여직원들끼리 모여 소주 한잔
씩 하면서 다음에 더 열심히 하자고 얘기하다 귀가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술마시고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얼굴 부위를 구타하
여 2월 13일까지 출근을 못한 사실이 있습니다.

2000년 2월 14일 제가 윤락가를 관할하는 대인동 파출소장으
로 발령을 받아 파출소장직을 잘 수행하려면 가사일에는 아무래
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남편에게 사정하기 위해서 국
제호텔 커피숖에서 만났는데 그때 남편은 흔쾌히 모든 것을 밀

줄테니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였고 시어머니도 집안일은 걱정
하지 말고 일을 하라고 하였으나 막상 직원이 서울 삼성의료원에
서 직장암 수술을 하였는데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자 미쳤냐고 하
면서 야유를 하였고, 하물며 남편의 근무지인 신안 하의도 파출
소장이 저와 잘 안다고 제 남편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때 전화통
화 중 그 직원의 면전에서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파렴치한 행동
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제가 또다시 이혼요구를 할까 두려워 5월부터
한달에 1번 정도만 집에 들어왔고 집에 오더라도 저와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기 때문에 얘기를 할 수 없었고 또 지금까
지 사정과 회유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남편이 이혼에 동
의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후의 수단으로 7월 4일 저와 조
용히 이혼에 동의해 주면 대출을 받아 1억을 주겠다고 편지를 써
서 등기로 우송하였습니다. 편지를 쓴 이유는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말로 할 수 없었고 남편이 저와의 이혼을 거부하
는 이유가 돈을 벌어주기 때문이지 절대로 저를 사랑해서가 아니
라는 판단과 특히 지금까지 저를 대하는 행동과 남편의 성품으
로 보아 1억쯤 준다고 하면 이혼의 동의를 해줄 것으로 생각되었
기 때문입니다.

7월 7일 남편이 편지를 받고 집에 올라왔고 7일에는 제가 귀가
를 하자 남편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얘기를 못했고 8일 밤에 근
무 후 제가 귀가를 했을 때는 남편은 자고 있었고 딸이 저에게
이혼을 하지 못하게 만류를 했으나 제가 거절을 하자 시아버지
가 저에게 할말이 있다고 하면서 들어오셨고 딸은 방에서 나갔습
니다.
시아버지는 "이혼을 꼭 할래"하고 물으셨고 저는 "예"하고 대
답을 하자 그러면 "네가 편지에 쓴 대로 돈(1억)을 줄래"하고 다
시 물으셨기 때문에 저는 "예"하고 대답을 하자 시아버지가 손
에 남편의 인감도장을 들고 있다가 보여주면서 "돈이 준비되면
연락을 해라, 도장 찍어주마"고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도 아니
고 20년 넘게 한집에서 살면서 모셔온 시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얘
기를 하시는데 집안 식구들끼리 이미 합의가 다 되어 있구나하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7월
9일 아침 간단한 옷가지와 화장품만 챙겨서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긴 했는데 친정으로 갈 수 없었고(친정 어머니가 이
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음)그렇다고 파출소에서 생활을 할 수
도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갈까하고 생각하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가족이 이사를 하기 위해 장만한 아파트가 있는데 가
족이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을 집주인이 내주지 않고 있는데 어
떻게 하면 전세금을 받을수 있지"라며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
던 이씨의 말이 생각이 났고, 이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바 흔쾌
히 승락을 하였기 때문에 그 집에 당분간 들어가 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참고로 친구 이씨는 영광과 울진에 주된 사업장이 있기 때문
에 거의 영광과 울진에서에서 보냈고 어쩌다 광주에 오면 아파트
에서 잠을 잔 것이고 아파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쌍촌동에 어머
니와 동생이 살기 때문에 불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휴가를 가게 된 것은 집을 나온 뒤에도 딸이 계속해서 이혼에
반대하면서 이혼을 강행하면 철저하게 복수하겠다고 했고 저는
저와 같이 살기를 원했으나 제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며 싫다고 했으므로 조용한 가운데 생각을 하여 최후
의 결심을 위해 혼자서 간 것이고 맹세코 친구 이씨와 같이 간
것이 아닙니다.
휴가기간 중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번 기회에 이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으며, 이젠 딸도 21살로 성인이기
때문에 제가 없어도 잘 살수 있을 것이고 평소의 딸과의 관계로
보아 금방 화해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철저하게
복수하겠다는 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휴가기간 중 결심을 굳히고 7월 18일 남편과 전화통화를 하여
서류정리를 위해 만나자고 하니까 21일날이 방학이기 때문에 22
일 광주에 온다고 하였고 24일 만나서 법원에 협의이혼신고를 하
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일이 비번이기 때문에 1억을 만들기 위
해 연금대부와 경찰공제회 대출을 위한 대출서류 및 이혼에 필요
한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을 발부받아 이혼신고서를 작성하였습
니다.
7월 19일 밤에 저의 직장동료와 저 그리고 친구 이씨가 식사
를 하고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고 엄마를 따라 가겠다고 하
면서 마음 변하기 전에 만나자고 하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 부른
것이고 저를 따라 오겠다는 말에 너무 기뻐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으며 친구 이씨가 저를 아파트에 데려다 주고 다시 운전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여 아파트에서 자고 가게 한 것 일뿐
간통을 하였거나 살림을 차린 것이 아닙니다.

20년 넘게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 그리고 여성편력에 시달리고
그리고 시댁식구들에 대한 한없는 경제적 지원과 그들의 너무도
당당한 지원요구, 98년 시동생들의 여자들에 대한 금전갈취등
파렴치한 행위 등은 더 이상 저를 인내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래
서 저는 이혼을 하기로 최종결심을 하게된 것입니다.

파출소장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그 한 여자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채 오직 딸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20년을 살다가 자식들
성인으로 키워놓고(아들이 친자식이 아닌 줄 아들과 딸은 모르
고 자랐음) 이제는 자기 자신을 되찾겠다고 하는 것이 도의적으
로나사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저는 이혼을 하기 위해 시도했던 때나 지금이나 조용히 해결하
고 싶어서 합의를 보려고 하니까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잘못했다
고 빌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20년 동안 부모님으로 모셔왔고 이
분들의 충격도 컸겠다 싶어서 찾아갔으나 시부모님은 어디 여자
가 집을 나가냐고 하면서 매번 대문도 열어주지 않고 내쫒고 집
에 있을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시아버지가 치
매가 있다고 하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도 하십
니다. 남편은 집안에 있으면서 그렇게 하도록 조종만 하고 나타
나지를 않습니다.
어린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교묘하게 뒤에서 조
종이나 하는 사람이 어찌 학생인들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으며
이런 사람을 선생이라고 믿고 어린 딸자식을 어찌 맡길 수가 있
겠으며 이러한 양심을 가진 사람의 교육을 받은 어린 학생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교육자의 양심과 윤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잘못한 점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며 교육자 이전에 진
정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어린 딸을 앞세워 엄마를 이렇게
철저하게 공격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먼 훗날 딸이 가슴
에안고 살아야할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그리고
남편이나 딸의 주장대로 제가 반성하고 집에 들어와 살기를 진정
으로 바랐다면 시부모님과 딸까지 대동하고 더구나 친척들과 아
들친구, 동네사람까지 동원하여 마치 큰 불륜의 현장이라도 잡
은 양 의기양양하여 딸에게는 카메라로 사진 찍게 하고 남편은
112신고, 전남지방경찰청 감사실과 동부경찰서, 대인동파출소에
전화를 하고 이어서 방송국과 신문사에 전화를 하여 일을 이렇
게 확대시킬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인터넷에 공개고발까지 시키는 사람
이 어찌 참다운 교육자로서 이 나라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중책
을 맡을 수가 있습니까?

참고로 파출소장의 근무는 일근-일근-당번-비번-일근의 순이
고 일근일 때는 08:00 - 21:00, 당번일때는 08:00 - 익일
10:00, 비번은 10:00 - 익일 08:00까지입니다.
대인동파출소는 윤락가를 관할하고 있고 윤락가 단속은 업무특
성상 21:00 - 익일 05:00까지 해야 하며 이 시간에 매일 지원의
경이 60명씩 나오기 때문에 이들을 감독해야 하며 파출소 직원들
도 다른 파출소에 비해 기본근무만으로도 힘든 상황이므로 윤락
가 단속에는 소극적이므로 파출소장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단속
이 어려운 실정이므로 부득이 심야에 활동을 많이 했고 밤에 잠
을 자지 못했으므로 낮에 자는 시간이 많았고 거기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기 때문에 아침에 늦잠을 잤으므로 아침을 하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어 약간은 집안살림에 소홀히 하게 된 것
일 뿐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거기다 2000. 6. 11자 계림파출소와 통합되어 관할구역 및 인
구가 많아지고 특히 계림동 지역민들의 반발 및 통폐합 휴유증으
로 저녁마다 직원들이 폭행을 당했으므로 소장으로서 책임감으
로 또한 포주들의 협박 등으로 많이 힘들었고 이때 초등학교 동
창들과 친구 이씨가 많은 도움도 주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현재의 계림파출소는 과거 경양파출소가 2000. 7. 1자로 명칭만
바꾼 것입니다.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이며 위에서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것
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서 입니다.

2000. 8. 10.

김 정 님

2000-11-14 09:38:06
211.xxx.xxx.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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