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제1과제는 언론 개혁"
 선지자
 2002-12-31 10:51:49  |   조회: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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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제1과제는 언론 개혁"






"노무현 정권 제1과제는 언론 개혁"
[특별인터뷰] 제1회 송건호언론상 수상자 정경희 선생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

원로 언론인 정경희(전 한국일보 편집위원) 선생은 자동차도 컴퓨터도 없다. 있다면 <미디어오늘>이 원고를 받는 불편 때문에 사준 팩스와 TV가 스물 네 평의 아파트를 고즈넉하게 지키고 있다.

고희를 맞은 원로 언론인에게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은 펜이다. 그 펜은 유일한 벗이자 동지이다. 그는 기자처럼 글을 쓰지 않고 선비처럼 글을 쓴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며, 오직 원고지와 씨름하며 시위를 당기는 줄처럼 긴장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한결같이 살아가고 있다.

얄팍한 처세와 굴복으로 권력에 빌붙었던 언론계의 눈에는, 홀로 소리치는 선생의 모습이 이단자로 비췰 만 하다. 기자정신은 오간 데 없는 월급쟁이, 황제의 신하로 전락한 기자들의 눈에는 노인의 헛소리로 비웃음 살만하다.

선생은, 언론인은 '독립된 권력'이라고 말했다. 그 선출되지 않은 권력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또 언론인은 고급인맥을 형성하면서 권력과 부를 축적한다. 국민이 신탁한 언론을 부귀영화의 발판으로 삼는 언론사와 언론인. 선생은 이러한 부류의 인간들을 경멸한다고 한마디로 못박았다.

언론은 두 가지 원칙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의 판단은 객관적으로 내려야한다는 것. 또 하나는 억강부약(抑强扶弱), 즉 약한 자는 북돋우고 강한 자는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패거리 지어 몰려다니는 한국 언론은 이 두 가지에서 멀리 벗어났다. 옳고 그름에 의한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른 주관적 판단에 의해 죽일 것과 살릴 것을 구분한다. 특히 약한 자는 마구 밟고 강한 자 앞에서는 비루먹은 개처럼 꼬리를 내려 아양을 떤다. 권력게임에 뛰어든 노름꾼같은 한국 언론의 풍속도가 선생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억만장자가 될 기회도 놓쳤고, 정치참여나 투기기회도 놓쳤다.(냉소적 소회였다)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지만 상당히 어렵다. 패거리에 끼어 들지 않으면 왕따 시키는 사회가 언론계다. 이 외로운 싸움, 자신과의 싸움은 바로 전투였다."

선생은 언론의 비판기능을 봉쇄하려는 한나라당의 소송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패거리 지어 달려드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고 거듭 말했다. 한나라당이 '개인 정경희'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언론 전체에 도전한 것인데도 약한 것에는 침소봉대하던 언론인들이 거대 야당의 횡포에는 백기를 들고 동조했다. 선생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언론은 정의도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 다만 강자에게 고개 숙여 무엇인가 누리려는 천박함만 남은 상태다. 그래서 언론인의 선배로서 더욱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다음은 최근 제1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한 정경희 선생과 22일 전남 여수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신문에만 종사했는데 인터넷 언론의 역할과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은 종이신문이 여론형성을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언론계는 세계 유례가 없는 조중동의 과점지배 상태이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개혁이 시급하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종이신문의 비중이 퇴색하면서 노무현 후보가 의표를 찌르고 승리한 것을 볼 때 매체의 구조가 달라진 징표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원인을 심각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노무현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것은 인터넷과 미디어선거의 원인뿐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구사해 온 김대중 고립화 정책을 유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한민족의 역동적인 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정경희 선생은 누구?

1932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한국일보 외신부장, 문화부장을 거쳐 부국장겸 주간 한국부장을 지낸 뒤 논설위원과 편집위원을 지내는 등 1993년 정년퇴직하기 까지 한국일보사에서만 35년간 몸을 담았다.

현재는 <한겨레신문>에서 '죽비소리' 칼럼과 <미디어 오늘>에서 '곧은 소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제3회 위암 언론상을 수상했다.

한민족은 아시아 전체가 잠들었을 때 3.1운동을 일으켰고, 이에 영향을 받은 거대한 중국이 5.4운동을 일으켰다. 또 4.19는 대만과 타이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면서 아시아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의 운동은 우리 나라에 그친 것이 아니다. 한민족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노무현 승리 또한 정치능력이 뛰어난 국민의 선택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뉴미디어(인터넷언론)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예찬이 너무 지나친 것 같아 지적한 것이다. 뉴미디어의 역할뿐 아니라 시민의 역동적인 힘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 패배로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조중동의 역할이 축소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은, 한 배를 탄 조중동의 영향력이 감소한 때문이다. 여기에 뉴미디어의 위력이 발휘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티조선운동 단체를 비롯한 언론개혁 단체들이 끊임없이 조중동의 폐해를 지적하며 운동한 것이 본질적으로 과점 3사 언론의 발을 묶은 것이다. 또 이회창 후보의 부도덕성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수구집단의 반역사성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한 것이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유권자, 지식인, 언론인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을 갖고 앞으로의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조중동이 노무현 정권과 어떠한 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상하는가.
"일단 타협을 시도할 것이다. 선거전에도 조선일보가 타협을 시도했다는 설이 있었다. 다분히 사실이라고 믿지만, 일단 증거가 없어 단정을 짓지는 못한다. 이제 조중동은 노무현 정권에게 타협을 시도할 것이다. 문제는 타협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언론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과점 3사 언론을 오너의 사유물이 아닌 사회적 공기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비리를 조사할 때 조중동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과연 사회의 공기인 거대 언론이 스스로 언론개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의구심을 잠재우려면, 과점매체의 구성원들이 노태우 정권 당시 편집권 독립운동을 펼쳤듯이 다시 언론자유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언론개혁 시민단체들은 이들에게 힘을 보태줘야 한다."

-노무현 당선자는 조중동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했다. 노 당선자는 이에 대해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지켰다. 이제 노 당선자가 언론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조중동 또는 조중동의 잘못된 판단자료를 통해, 한국 언론계와 사회를 매도하는 집단이 IPI(국제언론인협회)이다. 이들은 언론계의 국제적인 귀족집단으로 사주들의 사교클럽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IPI를 등에 업은 조선일보는 마치 자신들이 언론탄압을 받는 것처럼 사교클럽을 이용해 정부를 공격했다.

▲ '5억원짜리 칼럼' 한나라당이 소송을 건 문제의 '대쪽-귀족-언론'.


언론개혁은 입법화 과정을 거쳐야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추진하면, 과점3사는 틀림없이 정부가 언론을 탄압한다며 매도하고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황제경영에 의해 사유물로 전락한 과점 언론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입법화 과정은 불가피하다. 노무현 정권은 언론개혁을 위한 입법화에 전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는 은행에 대해 출자제한을 두고 있다. 그것은 한 두 사람의 대주주가 쥐고 흔들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과점언론사로 판정이 나면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계와 정치권이 이 제도에 대한 정보를 왜곡시키고 있다. 특히 언론은 '과독점'이라는 말은 빼버리고, '소유지분'을 제한시킨다며 언론탄압으로 위장해 저항하고 있다. 시장의 적은 독과점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도 시행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노무현 당선자가 과점언론사의 지배주주 소유지분 제한을 지지하고 있어, 일단 기대를 걸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앞으로 해야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노 정권이 할 일은, 첫째 언론개혁이며, 둘째는 6.15공동선언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현재 남북의 여러 가지 상황을 봐서 공동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그 밖의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아직도 수구언론은, 6.15공동선언을 지지하거나 남북화해를 주장하면, 친북 인사나 빨갱이로 몰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이 구호처럼 들리는 게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한국 언론이 반성해야 할 대목과 지향해야 할 방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2년간 군사독재가 판을 치는 동안 언론은 권력에 빌붙어 영화를 누려왔으며, 언론인들은 이를 상식처럼 여기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를 연장한 한나라당과 야합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상황이다.

언론은 현실적 이해에 말려 들어가선 절대 안 된다. 권력에 빌붙은 언론인의 글과 그렇지 않은 언론인의 글은 전혀 다르다. 한나라당은 내 글에 대해 김대중 패라고 몰아세우지만, 내 글은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직업적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이 권력에 오염되면서 언론인이 정치권에 팔려가고, 기업에 얼씬거리는 것이 능력이요, 영광이 되는 풍토가 됐다.

언론인으로서 가장 행복할 때가 전두환의 5공화국 때였다. 당시 언론상황은 언론사상 최악의 암흑기였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팔지 않고 글을 썼을 때 오는 독자의 열렬한 반응은 가장 행복한 선물이었다. 이러한 행복때문에 그 시대에는 늘 긴장상태와 공포의 그림자에 갇혀 살아야 했다.

양심을 팔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제법 힘이 들었다. 전화도청은 70년대 유신독재부터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20년 이상 이어졌다. 스물 네 시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공포감,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언론인들은 양심을 팔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독자들의 지지와 편지, 이것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언론인의 영광이자 행복이었다."

-제1회 송건호언론상의 수상자가 됐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저널리스트가 아닌 개인으로 말하고 싶다. 원고에 쫓기다보니 은퇴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고 고맙다는 말로 끊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받아선 안될 상이라는 생각에 밤새 고민을 하다 반납할 생각을 했다.



▲ 타락한 권력, 언론과 싸우느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은 선생...

ⓒ2002 김자윤

하지만 거절한다는 것도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언론개혁의 선배답게 처신하자, 상금(500만원)은 언론개혁운동에 동참하는 모든 언론단체에 성금으로 내놓자. 언론계 선배로서 합당한 처신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민망스럽게도 상은 받되, 상금은 조그만 성의 표시를 하자는 식으로 국면을 모면했다."

-송건호 선생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데, 선생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다면 들려달라.
"청암(송건호 선생의 호) 선생을 뵌 것은 한국일보 수습기자였을 때였다. 선생은 데스크를 맡고 있어 감히 말을 걸거나 인간적 접촉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다만 먼발치에서 공적인 업무접촉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받은 느낌은 학구적인 분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생활태도가 선비스타일이었다. 나중에 보니, 선비로서의 도리를 지키고 현실에 아둔하다(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주셨다."

-한국 사회에서 한길을 걷기도 힘들고, 깨끗한 모습으로 노후를 맞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언론의 한 길을 걸으며, 시대에 소리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그런 생각 없이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 일한 것뿐인데, 여기까지 왔다. 옛날 선비처럼 산 것도, 지사처럼 반성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의 하나가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자신과의 싸움이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직업이고, 그럼에도 과실이 생길 수 있는 직업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직업의 특성상 투쟁하듯이 살아왔다."

-고희를 축하할 가족도 없어 쓸쓸할 것 같다. 혼자 살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언론인으로 이렇게 살아왔듯이, 그저 살다보니 혼자 살게 됐다. 별다른 주의나 생각은 없다.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개인에게 정형화된 생활양식을 강요하는 것 같다."

-아버님이 언론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족사에 대해 듣고 싶다.
"아버님이 신문사를 운영하게 된 것은 해방정국의 산물이다. 당시 전북의 모든 정당과 단체들이 신문을 만드는데 합의 본 뒤에, 아버님이 창간한 신문이 '전라민보'엿다. 당시는 신문사 경영이 무척 어려웠다. 그때 가장 강력한 노동단체가 신문사노조였는데, 이들은 자신들과 수가 틀리면 조판을 뒤집거나 모래를 뿌리는 게 다반사였다.

신문사와 노조가 신탁통치 문제로 양분됐다. 노조는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신문사는 신탁을 반대했다. 이를 둘러싸고 노조가 신문제작을 방해하는 등 갈등이 심했는데, 노조 관계자 한 사람이 아버님을 여운형 패라고 모략하며 군정청에 무고했다. 당시 인쇄시설이 귀했는데, 군정청이 인쇄소와의 계약을 해약시켰다. 갑자기 신문발행이 어려워 근근하게 운영해오다, 6.25이전에 신문사 문을 닫았다.

,언젠가 정리해 밝히겠다며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에 선생의 뜻을 존중키로 하면서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쓰지 않는다.)

아버님의 희생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됐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은 조직적인 살인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런 탓인지 소신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도 전투행위처럼 경계심과 긴장감을 갖고 쓴다."

-지방언론사의 난립은 심각한 지경이다. 지방언론 개혁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말해달라.
"지방신문 개혁에는 선결과제가 있다. 지방신문 난립이 되면서 나타난 폐해는 경영기반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지방언론이 살아남으려면, 자발적으로 합병해야 한다. 최소한의 경영기반을 가져야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도에 2∼3개의 언론사면 적당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박지원씨가 이를 시도했지만, 언론사주와 노조의 반대에 의해 실패했다. 긴 눈으로 보면 경영주가 자발적으로 합병을 하고 노조가 동의해야, 지방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2-12-31 10: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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