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펌도리
 2002-12-17 18:23:22  |   조회: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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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협박'에 흔들리지 마시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정지환 기자

이회창 후보님에게.

안녕하세요. 과거 몇 차례 이 후보에게 공개편지를 썼던 '독립기자' 정지환입니다.

저는 최근 한 권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대통령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이까>라는 제목의 책인데,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주인공입니다. 박정희, 윤보선, 이승만 등 전직 대통령들의 '어제'와 김두한, 이주일, 히딩크 등의 '모습'을 통해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의 '오늘'을 얘기한 책입니다.

거기에는 제가 노 후보와 이 후보,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진장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쪼록 선거운동을 모두 끝내고 투표장에 가기 전날 밤,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일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이 후보에게 편지를 드린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는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월간조선> 사장 조갑제씨의 '협박'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민족의 화해보다 대결을 부추기는 <조선일보>의 '훈수'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이 후보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냉전수구세력의 편협하고 오만한 협박과 훈수에 좌충우돌하다간 민족 운명의 진로에 '자충수'를 둔 인물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협박'이란 말이 지나친 표현이라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갑제 사장은 공개적인 기고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이회창 후보의 "정치적 생명"뿐만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 거론했으며, 여차하면 이 후보를 "매장시킬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치인을 향하여 던져진 발언 중에서 이렇게까지 과격한 언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에게 감히 "물리적 생명(物理的 生命)" 운운하다니요?

그것은 바로 이회창 후보 당신의 '육체적 생명', 즉 '목숨'을 표현한 말이 아닙니까? 정말이지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공갈'이자 '협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언론인이 조·중·동을 가리켜 "조폭신문"이라 불렀던 것이 괜한 작명(作名)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게 조폭이나 양아치들조차 "아이구, 형님"이라고 할 폭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훈수'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조갑제씨가 내심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회창씨, 좋은 말 할 때 내 말 들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라는 것으로 읽혀지지 않습니까? 최소한 저에게는 그렇게밖에 해독되지 않더군요. 또한 이것은 이 후보를 거의 아무 생각이 없는 '무뇌아'로 취급하면서 자신의 '꼭두각시'나 되라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비난을 늘어놓으면서 조갑제씨가 제시한 근거가 고작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주장을 했습니다.

(1)"한국의 우파 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최근 선거운동 행태가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는 두 여중생 사망사건에 부시 대통령이 사과를 했음에도 또 다시 사과를 요구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재개정도 요구함으로써 반미운동에 편승하고 있다."

(2)"이회창 후보는 지금 반미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 두 여중생의 사망이 한미동맹관계를 오히려 더욱 공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승화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반미운동에 우파 지도자가 동조함으로써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그의 이상한 전략은 일종의 자해적 선거운동이다."

이회창 후보님.



▲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왼쪽)과 부시 미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조갑제씨라는 양반 참으로 대단한 분 아닙니까? 이 후보님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조씨가 이런 발언을 한 시점은 다름 아닌 12월 6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인 12월 13일에 부시 미국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깊은 슬픔과 유감(deep sadness and regret)"을 다시 한번 표명했거든요.

조갑제씨의 기준과 시각으로 보자면, 부시 대통령 또한 정말 웃기는 양반입니다. 이미 사과를 했는데, 왜 또 사과를 하는 겁니까?

(여기서 잠시 조갑제씨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당신을 "배신"한 부시 대통령에게도 한번 "물리적 생명"을 각오하라고, 그리고 여차하면 "매장시킬 것"이라고 일침을 놓아보십시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최소한 논리의 일관성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민하신 이회창 후보께서도 이미 눈치 챘겠지만, 조갑제씨의 주장은 정체성(正體性)은커녕 정체성(停滯性)에 머물러 있는, 부시 대통령보다도 못한 '낡은 사고'를 가진 자의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과 미군의 일방적인 무죄평결에 자연스럽게 분노를 표현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마저 식칼로 무 자르듯이 "좌파"로 몰아버리는 그런 사람이 이 후보에게 "이상한 전략"과 "자해적 선거운동" 운운하다니,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사람의 '이상한 훈수'에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충직하게(?)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서울시장선거 당시 관훈토론에 참석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김민석 민주당 후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선거 막판의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도 역시 그 중의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사안은 한나라당이 먼저 내놓았다면 거꾸로 더 열심히 그 긍정성을 역설했을 그런 문제라고 봅니다. 다만 민주당에 이슈를 선점 당했기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 논쟁을 보면서 지난 6월의 서울시장선거가 떠올랐습니다. 선거전이 시작되자마자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제시했습니다. 이슈를 선점 당한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는 '현실론'을 내세우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문제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자극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잠시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네가티브 캠페인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설사 당장은 불편하고 불가능해 보일 것 같더라도 결국 정치란 꿈과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현실화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의 질'도 조금씩 나아져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서울 집중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이고 참신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책대결을 벌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후보가 조갑제씨를 비롯한 <조선일보>의 논객들이 던지는 훈수에 좌충우돌하며 자충수를 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 후보는 2000년 8월 야당 총재로서 민족화해에 기여할 수 있는 승부수를 던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후보의 방북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만약 그것이 성사됐다면 통일정국의 판도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며, 이 후보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서 통일정국에서 의미심장한 '포석(砲石)'을 놓는 셈이 되었을 겁니다. 사실 이 후보는 그보다 두 달 전 "국익을 위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회견까지 했던 터가 아닙니까.

그러나 물론 그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조선일보>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이 후보의 방북 논쟁을 '북풍'으로 매도하는 사설을 잇따라 발표해, 야당 총재가 '통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봉쇄해 버린 것입니다. 이 후보의 원대한 포석을 '사석(死石)'으로 만든 그 사설의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한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방북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또 북한에 가는 것이 도대체 무슨 '훈장'이길래 이 야단들인지 도무지 생각 있는 '어른'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2000년 8월 21일자 '이 총재 방북과 또 다른 의미의 북풍')

결국 <조선일보>는 이 후보를 '생각 없는 철부지'로 조롱한 셈이거니와, 남북관계에 대한 이 후보의 전향적 자세에 <조선일보>의 심사는 여간 뒤틀린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2000년 8월 26일자 사설 '한나라당의 어정쩡한 대북'을 통해서 "6·15 남북공동성명 이후 한나라당의 대북 자세가 딱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어정쩡하게 흘러가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맹렬하게 비판했던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정부의 대북정책과 그로 인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관한 한 '속절없는 종속변수' 노릇을 할 뿐, 독립적인 대안세력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기회주의적이기까지 하고, 보수와 진보를 다같이 떨어져나가게 할 수 없다는 양다리 짚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요즘의 <조선일보> 논조, 그리고 조갑제씨의 극단적 주장과 똑같은지 이 후보도 놀라셨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가 "극단(極端)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길을 걷겠다는 속셈"을 버리고 "분명하고도 차별성 있는 입장 표명"을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정치지도자에게 '중도'가 아닌 '극단'을 강권하는 신문이 세상 천지에 <조선일보>말고 또 있을까요?

여기에는 <월간조선>도 가세했습니다. 2000년 10월호에 '이회창의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뒤 "김대중의 대북정책에 까닭 모를 불만·불안을 갖고 있는 보수층의 영웅대망론을 이회창은 비켜가고 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줏대 없이'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훈수'를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실제로 이 시점을 전후로 한나라당은 <조선일보>가 썼던 용어를 동원해 남북화해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지요.

이회창 후보님.

그런데 말입니다. 이 후보는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시각이, 역사교과서 왜곡에 앞장섰던 일본 극우세력의 평소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특히 <산케이신문>이라는 일간지와 <겐다이(現代)코리아>라는 월간지는 '모든 악의 근원은 김정일 정권', '멸시받지 않는 외교전략', '전쟁불사론' 등을 줄기차게 주창해 왔습니다. "정신대 강제연행은 없었으며, 일본의 통치로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이라고 강변해온 그들은, 이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정치는 김정일이 좌우한다"고 주장하며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보여줬던 <조선일보>의 논조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다음은 남북정상회담 직후,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일간지인 <산케이신문>에 약 3개월 동안 게재된 '주장'(우리의 '사설'에 해당)의 제목입니다.

「조일교섭­융화무드에 현혹되지 말라」(8월 21일)
「조일교섭­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8월 25일)
「대북 쌀 지원­국민의 이해는 얻지 못했다」(9월 15일)
「강제연행­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자」(9월 22일)
「대북외교­다시 쌀 지원에 반대한다」(10월 3일)
「북미접근­대북 포위망이란 발상도 필요」(10월 25일)
「납치의혹­야당은 무엇을 해온 것인가」(10월 27일).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 제목입니다.

「국군포로·납북자 포기할 작정인가」(8월 21일)
「한나라당의 어정쩡한 '대북'」(8월 25일)
「북에 끌려 다니는 장관급 회담」(9월 3일)
「'대북 쌀' 왜 어물어물했나」(9월 27일)
「북 핵·미사일 포기, 또 우리가 돈 대나」(10월 25일)
「국보법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나」(2000년 1월 18일)
「북한체제 본질이 변화돼야」(2000년 1월 18일)

두 신문의 사설 제목을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논조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그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었던 걸까요? 적어도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며, 그들의 검은 음모에 맞장을 뜰 수 있는 배포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결사 반대하는 이런 극우 성향의 기사가 가득 실렸던 <겐다이코리아> 2000년 10월호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조갑제씨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 2000년 9월 8일 김대중 대북정책 비방 기자회견 가진 김영삼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우선 이 책에는 "9월 8일 기자회견에서 니시오카 <겐다이코리아> 편집장의 최신간 <김정일과 김대중>을 손에 들고, 김대중 정권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조갑제 사장은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등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인사들과 함께 이 책의 좌담기사에 등장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본의 극우신문 <산케이신문>과 극우잡지 <겐다이코리아>, <사피오> 등의 보도를 근거로 한국 정부에 대해 '색깔논쟁'을 벌였던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뒤늦게나마 이 후보의 대각성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악랄하게 왜곡하는 일에 앞장서온 일본의 극우매체에 등장해 신명나게 떠들어대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과 언론인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냥 철부지 어린애들의 불장난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아니면 국민적 힘으로 그들이 역사의 무서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심판을 내려야 할까요? 이 후보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 많은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습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촉구하는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우리나라의 일부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어쩐 일인지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언론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회창 후보에게 잇따라 묻게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대선 후보인가?"

이렇게 묻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후보가 국민 여론의 영향을 받아 남북문제에 조금이라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절대로 당신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체 하다가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180도 방향을 바꿔왔습니다.

따라서 어쩌면 이 후보를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가진 대선후보'로 만든 것은 바로 한국의 냉전극우세력인 동시에 당신 자신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당신이 충실하게 따랐던 그 논리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놀랍게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그들의 주장은 '대화'와 '전쟁'의 차이를 모르는, '비판을 위한 비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그것을 <월간조선> 1998년 9월호에 실린 기사 '장세동-김일성 비밀회담의 생생한 대화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려 33회에 걸친 비밀회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전 대통령은 방북을 앞둔 실무자에게 "북한이 원하는 대로 들어 주라"면서 "북측에 불편을 주지 말고 아픈 곳을 먼저 공격하지 마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17일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장세동 안기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16대 대선에 출마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일제하의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40년 간 김 주석께서 북녘 땅을 이끌어 오시고, 그 동안 평양의 우뚝 솟은 의지를 보고, 이러한 발전을 위하여 심려해 오신 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비록 체제와 이념은 다르지만 주석님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조갑제씨, <조선일보>, 한나라당 사람들, 일본의 극우인사들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참으로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후보님. 그러나 그렇게 놀라지 마십시오. 기왕에 우리 민족이 전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통일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러한 양보와 이해는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마저 사사건건 햇볕정책을 물고 늘어지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서 '햇볕정책'을 비판하라."

이회창 후보님.



▲ 전두환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조갑제씨는 <월간조선> 2000년 3월호 '편집장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선악(善惡)의 대결(對決)입니다. 민족사적으로는 이단(異端)과 정통(正統)의 대결입니다. …이런 대결에선 전술적인 대화 교류는 있을 수 있어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진정한 화해, 용서, 타협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 미얀마 랭구운 폭파사건, KAL기 실종사건 등 북한의 '죄악'을 장황하게 열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는 남북의 분단과 전쟁의 본질적 원인을 외면한 채 역사를 단절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의 시야를 조금만 더 앞당겨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36년 식민통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과 굴종을 강요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수백만 명의 강제적 징병과 징용, 수십만 명의 정신대 동원, 수천만 명을 초근목피로 몰아넣은 미곡공출, 그 과정에서의 엄청난 민중의 희생 등 일제의 '만행'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과 일본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은 과거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건설적 미래를 열어가자고 주장합니다.

(저는 최근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시사회를 통해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나찌에게 억압당하는 유태인들의 비극적 모습이 재연됐더군요. 저는 우리에게도 그런 영화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냐하면 과거를 망각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철천지 원수의 나라'인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은 용서하고 화해하고 타협하자면서, 왜 북한과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겁니까? 더욱이 남과 북은 한겨레, 한 핏줄이 아닙니까. 외세가 냉전의 논리로 우리에게 강요했던 결과로 일어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언제까지 덧내면서 '적대적 의존관계'를 통치의 무기로 삼을 생각입니까?

조갑제씨처럼 남북관계를 영원히 불변할 선과 악, 이단과 정통의 대결로만 본다면 당연히 화해와 용서와 타협은 낄 자리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길게 본다면, 남과 북은 결국 화해와 공존과 공영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14일 서울시청 앞을 가득 메운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 인파

ⓒ 오마이뉴스

역사의 장강은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한 채, 냉전에서 화해로 접어드는 골목에서 방황하는 먹물들의 투정을 언제까지 용납해야 합니까? 아니 이 후보 스스로 아직도 왜 그 어두운 골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까? 어서 정신 차리시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십시오.

한쪽 날개만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새는 두 날개가 있어야 하늘로 비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리하여 진정으로 두 날개를 가지고 싶다면, 당장 <조선일보> 같은 세력과는 완전히 손을 끊으십시오. 2002년 6월의 '붉은악마 신화'와 12월의 '촛불시위 신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저들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마십시오.

그것만이 그나마 당신의 '물리적 생명'을 저들 냉전수구세력의 공갈과 협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사료되기 때문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2년 12월 16일 정지환 올림.

2002/12/16 오후 5:22
ⓒ 2002 OhmyNews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전문기자입니다.
2002-12-17 18:23:22
218.xxx.xx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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