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사먹는시대, 先覺者 봉이 김선달(金仁弘/鳳伊 金先達 )이 실존인물.
 나그네
 2018-12-28 23:31:39  |   조회: 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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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士, 才士(만담꾼), 鳳伊,初試, 先達 金仁鴻 平壤 出身에서 ~ 平安道 出身으로, 金仁鴻 을 忠州 金仁弘으로 정정해야 옳다.
- 飾演 金仁弘/鳳伊 金先達 [1] 高昌錫 飾演 -

0.1900년대 동명이인 金仁弘은 독립운동가임을 밝히다.

광해군이 실각하고 인조가 등극한 시점에 김인홍은 집안도 한미(祖農父商)한 데에다가 출신지마저 平安道였다.

김인홍(金仁弘) 진무(鎭撫) 崇禎三壬子式文武科殿試榜目
0.무과응시 나이 20세부터 39세까지
[무과] 정조(正祖) 16년(179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58위(166/374)
정조(正祖) 16년(179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44위(152/374) 신사(辛巳) 1761년(영조 37) 순흥(順興) 수원(水原) 별무사(別武士) 무과규구과녁 1순 1중 別武士) 무과규구과녁 1순 1중(貫革一巡一中)유엽전 1순1중(柳葉箭一巡一中) 강서 제오자 조이상(講書除吳子粗以上) 3기 취 1기(三技取一技) 김인홍(金仁弘) 진무(鎭撫) 『숭정3임자식문무과전시방목(崇禎三壬子式文武科殿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66]‧[古6024-159];하버드옌칭도서관

忠州金氏 金萬守의 아들 金道敏 이조참의로 世祖에게 直諫한 罪로 鐵山流配.

충주김씨 6대손 金雲敏 豊壤金氏로 改貫
문과(文科)에 급제, 정언(正言)을 지냈는데 관북정평(關北定平)에 적거(謫居)됨으로서 후손들이 선대(先代)의 세거지(世居地)였던 豊壤(京畿道楊州)을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이다.

金道敏의 아우 金雲敏은 함경도정평으로,
金道敏의 둘째아들 金亮漢은 평안도 벽동으로, 金亮禧는 평북의주로 이주,
충주김씨는 關西北지방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게 되었다.

忠州金南吉의 長子 金以珍은 月城(兎山金氏)金氏로,

忠州 金光佑는 조선 세종때 덕천군수(德川郡守)로 있으면서 조정에 직간(直諫)하다가 평안도(平安道) 성천(成川)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살게 되어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하고 그의 고향 월성(月城)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충주김씨 출생년도 명예의 전당 1001년도 나이추정.
김성연(金成鍊)10월25일생 1782년/김덕성(金德成)6월24일생.....김영엽(金永燁)1월7일생.....
김인홍(金仁弘) 1783년/김의모(金義模)11월7일생.....김윤덕(金潤德)2...
*1765~6년생 추정 *


洪景來,( 1780년 [1] ~ 1812년 5월 29일)
林尙沃, (1779년 ~ 1855년)

평안도 출신의 과거 급제자는 문관인 경우는 정5품(중앙부서 과장급) 이상으로 승진하기 힘들었고, 무관인 경우는 정3품(국장급)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려웠다.
봉이 김선달이 활동한 무대가 대동강지역인 평양, 넓게는 평안도 지역이다. 평안도 지역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여진족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그래서 평안도 지역은 조선왕조 내내 차별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었다.

서울(漢壤에 정수동(鄭守童 1808-1858)이 있었다면, 慶州(경주)에는 정만서(鄭萬瑞 1836-1896), 盈德(영덕)에는 방학중(方學重), 平壤(평양)에는 金先達(김선달)이 있었다. 해학과 풍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본관은 동래(東萊). 본명은 지윤(芝潤).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정수동은 왜어역관(倭語譯官)의 가계에서 출생했다. 아들 정낙술(鄭樂述)은 『역과방목(譯科榜目)』에 이름이 올라 있다.수동이란 호는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자의 문신이 있었고 이름 지윤의 ‘지(芝)’와 관련해 『한서(漢書)』에 ‘지생동지[芝生銅池 : 지초(芝草)는 구리 연못에서 난다]’라는 구절이 있어 동(銅)자를 따서 만들었다.

정지윤은 생업을 돌보지 않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의 여러 모순에 불만을 느껴서 평생을 미친 사람처럼 행세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말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풍자가 깃들었다.
규율적인 생활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포의시객(布衣詩客 : 벼슬이 없는 시인)으로 살았다. 김흥근(金興根)·김정희(金正喜)·조두순(趙斗淳)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으나 그들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두뇌가 명석해 아무리 뜻이 깊고 어려운 문장도 한 번 훑어보고는 그 요지를 깨달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겸손하여 모르는 것처럼 했다고 한다.

한편 정수동은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이면서 재밌는 일화들을 남겼다. 이러한 일화가 널리 유포되어 ‘기발한 익살꾼 정수동’으로 유명하다. 50세에 과음으로 인하여 죽었다.
시의 내용은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이 표출되고 있다. 또 시어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가 나타난다. 그는 시를 짓는 것은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했다. 번거로운 문장이나 허황한 형식을 배격하고, 간결한 가운데에 높은 격조를 담은 시를 썼다.
“성령이 한번 붙으면 붓끝을 다할 따름이지, 시체나 신풍을 좇거나 교묘하고 섬세한 것을 다투지 않는다.”는 성령론(性靈論)을 구현한 시인이다.


정만서는 경주시 건천면 출생으로 용명2리에 무덤이 있다. 비문에 의하면 동래 정씨로서, 이름은 용서(容瑞), 자는 만서(萬瑞), 호는 춘강(春岡)이고, 1872년(고종 9)에 현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1896년 61세로 죽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그는 일생을 평민과 더불어 살면서 부자와 관료들의 횡포에 맞서고 풍류와 임기응변의 재치로 생활의 방편을 삼는가 하면, 삶과 죽음 등 근원적인 문제를 자각시켜 주는 일화도 많이 남겼다. 다음은 정만서에 관한 일화이다.

하루는 정만서가 대구 서문시장에 나타나서 땅을 치며 종일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는다! 그것이 슬퍼서 운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연유를 캐어물으니 “여기 늙어서 죽지 않을 사람 누가 있느냐?”고 하여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크게 놀라며 모두들 웃고 헤어졌다 한다.

또한, 정만서가 객지에서 복막염으로 죽을 고비에 이르렀는데, 아들이 소식을 듣고 모시러 왔다. 배가 부어서 아들 등에 등을 대고 업히어 오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걱정스레 안부를 물으니 “등 따시고 배부른데, 이보다 더 좋은 팔자가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으며, 임종 직전에 친구들이 찾아와서 죽음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아직 초죽음이라서 죽어 봐야 알겠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물을 사먹는시대,대동강물 팔아먹은 先覺者 봉이 김선달!
순조 대부터 일어난 세도정치의 파고에 휩쓸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지방에서는 탐관오리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야반도주하는 통에 유랑민이 속출했고, 학정에 저항하는 민란까지 연이어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민간에서는 구태의연한 사회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다.
평양의 김선달, 서울의 정수동, 영일의 정만서, 영덕의 방학중 등이 그런 만담의 주인공이었다. 그 중에 김선달은 특히 기발한 착상과 허를 찌르는 행동으로 상대를 농락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1790년 평안도에서는 2356명의 농민이 유랑 길에 떠나 연말까지 50%에 해당하는 1083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당시 평안도에서는 대청무역이나 금광업으로 거부가 된 상인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그들을 등쳐먹는 투기꾼과 건달의 활동도 늘어났다. 김선달의 사기행각이 대부분 금전과 관련되었다는 점이 이런 사회 현상을 대변해 준다.
1790년 평안도에서는 2356명의 농민이 유랑 길에 떠나 연말까지 50%에 해당하는 1083명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당시 평안도에서는 대청무역이나 금광업으로 거부가 된 상인들이 많았고, 이에 따라 그들을 등쳐먹는 투기꾼과 건달의 활동도 늘어났다. 김선달의 사기행각이 대부분 금전과 관련되었다는 점이 이런 사회 현상을 대변해 준다.

조덕영(曺德榮) 평안감사, 임상옥의 감시

임상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거간꾼들은 혼비백산.
- 곽산군수,朝鮮後期 最高의 巨商 林尙沃=1779년 의주에서 태어났다 , 刑曹正郞 曺德永, (昌寧曺德榮).
임상옥은 조선 후기 중국무역의 중심지 의주에서 태어나 거상으로 성장했다. ‘상도’라는 드라마로도 방영될 만큼 탁월한 상업적 수완을 지녔던 그는 인삼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다.
청나라 상인들이 인삼불매 동맹을 맺고 인삼 값을 낮추려 하자 인삼을 불태워 오히려 10배나 높은 값을 받고 팔기도 했다. 의주 일원에서 난을 일으킨 홍경래가 한때 그의 상단의 都有司여서 반란군에 가담할 뻔한 위기도 있었으나,

한 스님의 충고로 이를 잘 벗어나 오히려 義兵쪽에 加擔했다고 한다.
상인이었지만 3품의 벼슬까지 제수받은 그는 의주에서 수재(水災)가 나자 사재를 털어 빈민을 구제했다. 말년에는 큰 집에 살면서 빈민을 구제하고 문인들과 교류 하며 여생을 보냈다. 

선달先達은 조선 철종시대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은 사람

이징옥,이시애난으로 함경도는 물론 평안도, 황해도까지 서북부지방의 출신은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되는 등 차별을 받게됐다. 과거에 나가 합격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합격이 되더라도 소위 발령을 내지 않거나 요직을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차별을 하죠.
이런 불만들이 모여 평안도 지역에서 일어난 '洪景來의 亂'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김선달이 초시를 딴 내력
젊은 시절 김 선달은 초시 벼슬 한 자리라도 얻어 볼까 하여 한양으로 올라 왔다. 그 시절의 김 선달은 머리도 비상하고 글공부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으나 이상하게 과거시험만 보면 낙방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김 선달은 아직 벼슬운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으로 돌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다섯 번, 여섯 번, 낙방을 거듭할 수록 점점 할말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땅에까지 떨어진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이번만큼은 꼭 합격하리라 다짐하고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이윽고 초시를 치르는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무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걸 보니 오늘 날씨도 찜통을 방불케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김 선달은 시험장으로 가면서 두꺼운 겨울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시험장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오뉴월 염천에 김 선달은 솜바지에 털목도리, 솜외투에 털모자까지 쓰고는 시험장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다른 선비들은 갓에 도포를 입고서도 더위에 쩔쩔매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 시험관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왜 삼복더위에 솜옷을 입고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가?』 김 선달은 짐짓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며 대답한다. 『시, 시험관 나리. 저, 저는 평양에서 온 사람인데 한양으로 오는 동안   주막에서 열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열병이라는 말을 듣자 시험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 유행하는 열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는데........ ,

꼼짝없이 한 열흘   앓아야 낫는다고 하니 조심해야겠구나」 시험관은 얼른 김 선달에게서 떨어진 다음 큰 소리로 말했다. 『너는 무엇을 외우겠느냐?』 『예, 저는 주, 주역을 외우겠습니다』 김 선달은 일부러 시험관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자 시험관은 혼비백산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가까이 오지말고 거, 거기서 외거라』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주역을 왼다면 어떻게   들으시려고 그러십니까?』 김 선달이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말하자 시험관은 아예 단상으로 올라가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본시 귀가 밝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서도 잘 들을 수가 있다. 그러니   염려말고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어서 외기나 해라』 『그럼 여기서 외워 보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김 선달은 중얼중얼 경을 외는 시늉을 했다. 얼마쯤 지나자 시험관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깃발을 들어 올렸다. 『됐다. 그만하면 합격이다. 어서 돌아가도록 해라』 시험관이 김 선달을 빨리 시험장에서 내쫓으려고 건성으로 합격을 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김 선달은 초시 벼슬도 기발한 꾀를 부려 따냈다고 한다. 선달이라 하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은 벼슬의 한 품계로서 생원이니 하는 것과 같이 문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 즉, 조선 중기 이후에는 주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만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관직을 못 받은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선달'로 불리웠다. 관직을 받지 못한 김선달이 고향인 평양에 내려와 '봉추당'이란 현판을 걸고 훈장 노릇을 한지도 십년 처음에는 '김선달'이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학생들이 넘쳐 났지만 일 년이 다르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서탁에 하나둘씩 빈자리가 빈자리가 늘기 시작했다.

거상들이 가장 많은 동네 중 하나는 평안도인지라 평안감사직을 놓고 관리들 사이에 경쟁, 백성들이 모두 알아주는 효자였음에도 불효라는 죄목으로 잡혀간( 羅州吳氏 以文의 아들 夏錫)오하석이 심했는데 조정의 실세로 떠오른 조덕영 역시 평안감사 자리를 노리는 무리들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얼마 전 조덕영은 거금을 주고 평안감사직을 샀고 2년 동안 돈방석에 앉을 생각에 잔뜩 들떴다.


하지만 평안감사 부임연회에서 거두어들인 돈이 성에 차지 않자 조덕영은 다음날부터 바로 사람들을 선화당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김선달이 사윗감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비단 장사로 돈을 벌어들인 오영좌(吳英佐는 高麗時代)의 아들 오하석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평양 백성 오하석이 걷질 못해 포졸들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걸 본 오영석과 유상들은 더 이상 조덕영을 두고 볼 수 없다며김선달에게 치부책을 건넨다. 김선달은 한양에서 십 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지냈던...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지냈던 왈패...가게 된다.

하지만 조덕영은 이 모든 것을 꾸민 자가 김선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원한을 갖게 되고 권모술수로 다시 관직을 얻는다. 이렇게 조덕영과 김선달의 악연이 시작되고 죽음의 위기에 몰린 김선달은 가족과 함께 연경에 자리를 잡으려 하지만 '홍경래의 난'에 휩쓸리게 되고 가족들은 청나라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놓이게 된다.

과거에 홍삼 거래로 인해 김선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청나라 陳大人은 노예를 풀어주는 값으로 김선달에게 많은 금액을 요구하게 되고 김선달은 가족과 힘없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돈을 구하려 한다. 가진 것 없는 김선달은 조덕영의 돈을 훔치기 위해 대동강 물을 팔게 되고 이에 조선 최고의 사기꾼인 봉이 김선달과 조덕영의 숨막히는 대결이 시작된다.

대감께 하나만 묻겠습니다. 대체 이 나라는 누구의 것입니까? 임금의 것입니까, 사대부의것입니까 , 아니면 외척의 것입니까?
지금 이 나라는 무고한 삼천 명의 백성을 청나라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 잘 살게 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의 땅에서 노예로 살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조선 통치이념인성리학에서 '민심은 곧 천심이라' 했고, '백성이 곧 하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평안도는 평안도 백성이고, 조선은 조선 백성이란 뜻 아닙니까? 그 팔려 간 삼천 백성은 어느 나라 백성입니까
2018-12-28 23:31:39
121.xxx.xxx.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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