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비바람 막을 집이면 그만인것을
 참옥천사랑
 2018-12-27 20:33:34  |   조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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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황희 정승네 치마 하나 가지고 세 어미 딸이 입듯’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청빈함을 나타낸 글이다.

‘비새는 초라한 정승집’ 일화가 있다. 하루는 세종이 황희의 집을 찾았는데 너무 초라했다. 방안엔 거적이 깔려 있었고 천정은 빗물이 새서 얼룩져 있었다.
세종이 비용을 대줄테니 당장 집과 세간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그러자 황희는 “나라의 녹을 먹는 선비가 옷과 비바람을 막을 집이 있으면 그만입니다”라며 사양했다.

‘황치신의 집들이’ 일화도 전해진다. 호조판서를 지낸 맏아들 황치신이 집을 새로지어 낙성식(落成式)을 열었다. 낙성식은 완공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황희는 아들의 집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비는 청렴해 비가 새는 집안에서 정사를 살펴도 나라 일이 잘될지 의문인데 이렇게 호화로운 집은 뇌물이 성행치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런 궁궐 같은 집에는 조금도 앉아 있기 송구스럽다.”

이 말을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백관(百官)들도 불안해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남에게는 어질었지만 자신의 가족에게는 엄격했던 황희. 황치신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크게 뉘우치고 그 집을 버리고 따로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이 시대의 황희정승은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세종임금이 황희정승의 곤궁함을 듣고 조정 관리로 하여금 황희정승의 형편을 알아보라고 보냈다 마침 새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고있는 노인에게 “황희정승댁을 찾고있는데 혹시 아시요“하고 물었더니 이집이 황희집이요만 뉘시요”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정승은 조선의 정승임에도 불구하고 누빈 관복을 입고 초가집에 살았다. 이에 황희 정승을 의심스러워하고 음해하려던 무리가 황희정승이 재산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으로 황희정승의 거처를 기습적으로 방문했다.그런데 정말로 황희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누빈 솜옷을 입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에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글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황희의 궁색함에 의구심을 품은 여러 재상들이 황희의 집에 들어갔으나 벽에는 달랑 누빈 관복 한 벌만 걸려 있었고 아무런 장신구도 없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부인이 잠시 나가고 황희의 궁색함을 보자 혀를 끌끌 차면서 집안을 둘러보던 여러 재상들이 " 상거지도 이보다는 좋은 집에서 살겠다" 라고 말을 하자 황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누빈 관복을 입고 초가집에 살아도 내 나라의 백성은 배불리 먹어야하네"

백성을 사랑한 충주목사 이현보 (1467-1555) 존경받던 이현보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36세에 사관으로 사초史草를 바르 게 쓸 수 있도록 직언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얻었고,
38세 때는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으로 유배되었다.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목민관
이현보는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탁월한 목민관이었다.
“1516년 충주목사였던 이현보가 어버이 공양을 위해 안동부사로 발령받았다. 그러자 떠나는 이현보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백성들이 길가에 가득했다.”(퇴계선생문집 ‘이현보 행장’) 
그 뿐이 아니라 각 문헌을 보면 목민관 이현보를 따르는 백성들이 줄을 잇고 있다.

“충주 백성들이 기운을 차리도록 이현보를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소서.”중종실록1517년 12월 17일) 
“영천 군수 시절 선생이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규모있게 일을 처리하자 이듬해 본래의 액수를 채우게 됐다. 
이에 거두기 어려운 세금은 모두 문서를 불태워버렸다.”(농암선생연보)
중종실록을 쓴 사관은 이현보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이현보는 일찍이 늙은 어버이를 위해 외직을 요청해서 무려 여덟 고을을 다스렸는데 모든 곳에서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이현보가 외직을 자청한 것은 바로 ‘어버이 부양’ 때문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효성이 지극했으면 이현보가 죽은 뒤 받은 시호가 효절공(孝節公)이었겠는가.

퇴계 이황이 쓴 이현보의 행장(行狀·죽은 이의 간단한 일대기)과 해동잡록‘이현보’편을 보라.
“예안 고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찍이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어 어버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당시 아버지(이흠)가 94세, 숙부(이균)가 92세, 장인(권수)이 82세였다. 이 세 사람과 고을 사람 70세 이상의 노인 6명으로 구로회를 만든 것이다. 구로회라 이름 지은 까닭이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가 향산에 은거해서 주변의 노인 9명과 함께 주연과 시회를 가진 것에 착안했다. 당시 67세였던(1533년) 이현보는 구로회에 참석해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이 구로회는 이현보 집안의 양로잔치가 되어 대대로 전승되었다. 훗날에는 참석자 수가 9명으로 제한되지 않았고, 기로회, 백발회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이어졌다. 양로잔치의 규모도 갈수록 커졌다.

“안동에서 노인들을 봉양하는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양친을 모셔서 연회의 주빈으로 삼았다. 이현보는 자제(子弟)의 예로 축수하는 잔을 받들어 올렸다. 그 화락한 경사를 지극히 하니, 보는 자가 다 탄복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는 고금에 드문 일이다.”(<퇴계선생문집> ‘이현보 행장’)

“고을 내 80살 이상의 양반에서 천예(賤隸)까지 남녀 불문하고 찾아가 나이가 맞으면 모두 참석하게 했다 수백명에 이르렀다. 고을 노인들을 모시고 양친도 함께 모시어 즐기시게 한 것은 당연히 흔한 일이 아니며 나(이현보) 역시 후에 이런 모임을 또 가질 수 있을 지 알지 못하겠다.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농암선생문집권1 ‘화산양로연시병서’) 

부모와 장인은 물론 고을 사람들을 위한 노인회를 만들고, 기회있을 때마다 양로잔치를 베풀어 자신의 어머니·아버지를 잔치의 주빈으로 모셨다는 뜻이다. 아들이 차려준 동네잔치의 주빈이 된 부모는 얼마나 아들(이현보)을 기특하게 여겼을까. 
그 뿐이 아니었다. 
“이현보는 동네 언덕의 거대한 돌 위에 집을 짓고는 어버이를 모시고 놀며 구경하는 곳으로 삼았다. 이곳이 바로 애일당(愛日堂)이다.”(<퇴계선생문집>) 

■색동옷 입고 춤 춘 이현보 
그런데 퇴계 이황의 언급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이현보의 효성과 우애는 천성이었다. 항상 어버이를 위하여 외직을 원하여, 7~8차례나 지방관이 되어 극진하게 봉양했다. 양친이 집에 계실 때에는 자손이 앞에 가득한데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웠다.”
이현보는 왜 색동옷을 입고 어머니·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피웠다는 걸까. 그것도 어린 자손들이 가득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는 이현보가 춘추시대 때 초나라 은사인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즉 노래자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모셨다. 그는 나이 70살이 넘었음에도 오색찬란한 옷을 입고 딸랑이를 갖고 어린아이처럼 놀면서 부모를 즐겁게 했다. 한번은 부모에게 물을 갖다드리려다 넘어졌다. 노래자는 부모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물을 더 뿌려 드러누운 뒤 어린아이가 우는 흉내를 냈는데 이를 본 부모가 매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는 또 새를 희롱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초학기> 권17 ‘효자전’) 노래자는 효(孝)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뭇 선비들의 ‘롤모델’로 추앙받았다. 

중종반정으로 복직되어
형조참판, 호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으나,그때마다 외직을 자청하여
영천, 안동, 경주, 대구, 경상도관찰사 등의 8개 고을살이도 했다. 외직의 자청은
남다른 효심孝心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생에 보다 가깝게 가고자 하는 일관된 신념이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선생은 국왕과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표연히 귀거래했다.
이는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 이래 없었던 일로,
우리 농암선생이야말로 천백만 명 가운데 단 한 분뿐이다”라고 찬양했다.
 은퇴 후 선생은 농부로 자임自任하고

일게 서생書生과 다름없는 담백하고 물욕없는 생활을 하여 ‘유선儒仙’으로 추앙받았다.
 그래서 조선전기에 보기 드문 ‘재야정승在野政丞’이 되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직책을 띠고 있었다. 89세에 몰沒하니
나라에서는 ‘孝’와 ‘절개’의 정신을 기려 ‘효절孝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2018-12-27 20:33:34
112.xxx.xxx.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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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8-12-28 11:48:35 211.xxx.xxx.68
황희 얘기는 빼시지요. 다 알려진 황희의 악행이 있는데 황희는 무조건 존경받을만한 위인이란걸 아이들이 알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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