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산(머리산) 바위 위에 장수 발자욱들은 미스테리한 수수께기, 설악산 울산바위
 金東熙
 2018-12-16 21:49:22  |   조회: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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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산
청성면 소재지 입구에서 좌측으로 보면 보청천이 흐르고 주위 경관이 좋아 보이는 그곳에 오똑하니 솟아 있는 조그만 산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정자도 지어져 있다.
이 독산은 옛날 대홍수때 속리산에서 떠내려온 것이라 한다. 그러자 속리산 주지스님은 중을 보내 이 물줄기를 따라 독산을 찾아 나서게 하여 결국 청산현에 흘러와 있음을 발견,「독산이 애당초 속리산 소유였으니 매년 지세를 바치도록 하라」고 전달하였다.

이에 매년 지세를 바쳐 오다가 현명한 현감 하나가 이 청산현에 부임하여 또 그해 지세를 받으러 온 중에게「이 독산은 우리 청산현에 아예 필요가 없으니 가져가라. 그러지 못한다면 해마다 보관료나 지불하라」하여 그 후로는 속리산 주지에게서 해마다 보관료를 받아왔다 한다.

지난 5월초순 이 나무가 수일에 걸쳐 울음을 그치지 않아 온 동네 주민들이 모여 제를 지냈고 곳곳에서는 이 신비한 현상을 목격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녹음기와 비디오까지 동원, 촬영하기도 하였다.이 마을의 뒷산 광주리산 중턱에는 형성 연대가 6억년으로 추정되는 자연 석회동굴이 개발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데
이 동굴은 지난 75년 보도진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개발가치가 없다는 관계기관의 판정을 받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동굴을 탐사해 본 사람들은 내부의 신비함과 웅장함에 한번쯤 개발을 고려해 볼만한 관광자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으며 아직도 이 굴과 주변 보청천변의 경관이 어우러지면 관광명소화 할 여지가 충분히 남겨져 있는 것이다.

설악산에 자리 잡고 있는 웅장한 울산바위. 하지만 울산바위는 왜 울산에 있지 않고 설악산에 있는 것일까?
또 남해바다 일곱 개의 섬은 왜 칠섬바다가 아닌 칠산바다가 외었을까? 신령님의 부름을 받은 봉우리들은 금강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일만 이천 봉우리가 다 모인 탓에 울산바위는 금강산으로 향하고 있던 울산에 머물게 된다. 너무나 슬퍼 흘리게 된 눈물이 계곡을 이루었다. 하지만, 울산바위는 울산에 아무 탈없이 정착할 수 있었을까?

청성면은 산성면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 산성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이 성이 있기 전에 이 마을에 어떤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이 남매는 보통 사람과 달리 출중한 힘과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그 어머니에게 화나는 일이 생겨 이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게 되었다.

즉 아들에게는 나막신을 신고 한달내에 서울을 다녀오게 하고 딸에게는 뒷산에 성을 쌓도록 하여 먼저 끝내는 사람은 용서를 하나 늦는 사람은 용서치 않겠다고 하였다. 아들은 비교적 쉬운 일이므로 기한내에 서울을 다녀 집에 돌아 왔으나 딸은 성 쌓는 일을 도저히 끝낼 수가 없었다. 아들은 서울을 다녀와 보니 누이가 아직 성을 쌓기에는 너무 멀어 누이가 어머니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벌을 받게 될까 염려되어 어머니에게는 도착을 숨기고 누이의 성 쌓는 일을 도와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누이 몰래 성을 쌓았다. 누이가 낮에 나와 성을 쌓으려 하면 이상스럽게 밤새 성이 많이 쌓여 있어 동생이 오기 전에 성이 쌓이면 동생이 벌을 받을 것 같아 밤 사이에 쌓아진 성을 허물어 뜨리기에 열중하였으니 마침내 아름다운 두 남매의 두터운 정을 알게 된 어머니는 두 남매를 모두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경남 고성군에는 하이면 덕명리의 바닷가 바위에 선사시대의 화석인 '공룡발자국화석'이 있습니다.

옛날 어떤 고장에 힘센 장수가 살았는데, 장수의 발자국이나 손자국, 타던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장수가 큰 바위를 옮겼거나 무거운 돌을 던지고 놀았다는 단편적 이야기도 있다. 한편 장수바위는 옛날 평민의 집에 힘센 아기가 태어나면 역적이 될까 두려워 죽여서 묻은 곳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오뉘산성에 나오는 오뉘힘내기에서 힘센 남동생이 서울에 다녀오는 동안 누이가 쌓던 성터의 바위가 바로 장수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의 장수바위는 그릇된 장수가 개심하도록 가르치는 구실을 하며,
농바위전설은 장군의 출현 시기에 대해 인식 차이를 보인다.
무주읍 오산리, 적상면 괴목리와 사산리의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바위를 칼로 베어 잘랐다고 하신,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에서는 영규대사가 창으로 바위를 잘랐다는 창바위전설이 전한다.
또 어느 장수가 양쪽에 있는 바위를 건너뛰었다는 전설도 있고,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에는 장사가 치마에 싸서 갖다 놓은 바위가 서너 마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용인시 원삼면 독성리의 장수바위는 장군이 부하들과 도읍지를 정하려는데, 서울이 먼저 정해지자 화가 나서 흔적을 남긴 바위이다.
오뉘힘내기에서 오누이 대신에 남자 장수와 여자 장수가 등장하는 장수바위도 있다.

탄부면 장암리의 장수 바위 '장바우'는 마을 뒷산에 '장수 바위'가 있어 '장바우' 바위에 커다란 '장수 발자국' 표시가 되어 있으며?..바위에 깊은 구멍이 뚫어져 있다.덕석바위에는 지금도 소년장수의 발자국 및 말의 발자국 흔적이 있다,

인왕산 맨 꼭대기 단단한 바위에 큰 바위덩이에 움푹움푹 발자국

창선면 당항리 금오산(질마산) 장수바위

춘천 용화산 장수바위.화양리 장수바위
한 장수가 이곳에 산막을 치고 병졸을 지휘하였는데 이 바위에 기를 꽂아 놓고 앉 아서 사방을 경계하면서 한참 정신없이 병졸을 지휘하던 중 현기증이 일어나 바위를 짚었다 한다. 그 후로 이 바위에는 깃발을 꽂았던 터와 장수가 앉았던 터, 손을 짚었던 터가 있고 장 수의 발자국과 말의 발자국도 남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장수가 있던 바위라 하여 장수바위라고 한다

바위는 마당처럼 넓고, 어른 발보다도 휠씬 큰 발자국이 서너 개 찍혀 있다. 옛날 한 장수가 바위를 성큼성큼 걸어서 지나갔으므로 이처럼 발자국이 남았다고 한다.
바위 위에는 돌장수의 발자국이 여러개 찍혀있다,

날개 달린 아기장수 전설 - 홍업선(洪業善)의 묘

홍업선(洪業善)은 약 300년전 제주시 애월읍(涯月邑) 신엄리(新嚴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풍모가 예사 사람과 다르고 또한 힘이 세었다. 집안은 농사를 지었지만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므로 아버지는 항상 짚신을 삼아 이 아들에게 팔아오라고 하여 살림을 보태었다.

   아들 업선은 꼬박꼬박 성안(제주시)에 가서 짚신을 팔고 왔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아들의 행동에 이상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차차 유심히 보니 너무 빨리 성안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하루는 일부러 새 짚신을 신기고 성안에 가서 짚신을 팔아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유심히 가늠해 보았다. 지금 시간이면 성안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겠지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아들은 어느새 짚신을 다 팔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며 일부러 모른 체 하고는 아들 몰래 신고 간 짚신을 보았다. 새 짚신에 흙이 한 점도 묻어 있지 않아 있었다. 아버지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술을 빚어 놓게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 업선(業善)을 불러 별미인 술이니 마셔 보라고 하였다.
   어린아이지만 아버지가 시키는 것을 거역할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얼마 후 술기가 돌아 아들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가만히 옷을 벗고 몸을 조사해 봤더니 이게 웬일인가? 아들의 겨드랑이에는 좋은 명주가 휘휘 감겨져 있었고 이 명주를 푸니 큰 새의 날개 만큼한 날개가 나와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겁이 났다. 만일 이것을 관에서 알면 역적으로 몰릴 것이요 삼족의 멸망할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얼른 가위를 가져다 날개를 잘라버렸다. 아들은 몹시 고단하다하며 일어났다. 몸단장을 하려다가 날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가 한 일이어서 감히 원망소리를 못하였다.
   그 후 업선은 전보다 기운이 없고 발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보통사람에 비하면 힘이 장사여서 누구도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홍업선의 묘는 현재 제주시 외도리(外都里) 위쪽 사만이라는 곳에 있고 매년 묘제를 지내고 있으며 그의 9대 손들이 살아 있다고 한다.

明나라 李如松 將軍은 星州李氏 朝鮮人의 後孫이다
이여송은 중국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선조는 조선 사람이다. 선조가 중국에 가 정착하였으니 따지고 보면 이여송은 조선 사람인 것이다. 이여송이 임진왜란 때 명을 받고 조선에 왔는데, 조선의 산수를 보니 그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태어나는 것을 그냥 두면 장차 중원이 위태로울 것이라 생각하여 전쟁이 끝낸 다음 단맥하였다(이여송이 혈을 찌른 도락산)이여송이 전쟁을 끝내고 맥을 다 끊고 귀국다가 보니 백두산에 웅장한 묘 하나가 있었다. 대대로 장상이 태어날 수 있는 명당이었다. 조선에 인재가 태어나는 걸 막기 위해 형을 끊고 귀국하였다. 이여송이 귀국하자 부친이 조선에서 한 일을 물었다.

이여송은 왜병을 몰아내고 단맥한 일과 백두산 묘의 혈을 끊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부친이 듣고 그것이 네 할아버지의 묘인데 이제 가문은 망하게 되었다며 탄식하였고 이여송의 가문이 망했다. (산의 혈을 끊다가 혼이난 이여송) 초립동이가 이여송의 진중에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초립동이가 이여송을 보고 흑심을 품지 말고 귀국하라며 호통 쳤다.

「자기 조상의 혈을 자른 이여송」 ‘조선의 혈을 자른 이여송’과 ‘가문을 망친 이여송’이다.
이여송이 중국으로 돌아가 “어디를 가보니 장군이 날 것 같아서 혈을 잘라 버렸다” 하니까,
듣고 있던 문중 사람이 탄식하면서 “야야, 거기는 우리 몇 대 할아버지 터이다”라고 하였다.

明太祖 朱元璋(1328-1398) 대명일통지에 주원장이 이르기를 "짐의 조상은 조선인이다.
짐의 조상의 묘소가 조선(江原道 春川市 牛頭洞 牛頭山)에 있다
" 청주한씨 문정공파 족보- 朱元璋의 皇后(韓麗妃)는 高麗人으로 知淳昌郡事 韓永矴의 딸이며, 韓確의 누이.'한(韓) 여비(麗妃)'였다.
한 황후는 명 제3대황제 영락제(永樂帝)의 어머니이다.
또한 한 황후의 동생 한계란(韓桂蘭)은 제5대 선덕제의 皇后가 되었으니
'韓確(세조 때 명신)'은 두명의 누이 동생이 明나라 皇后가 된 샘이다.

李成桂는 朱元璋의 承認을 받아 朝鮮王에 올랐다.

주원장이 고려사람이라는 사실은 또 있다.
주원장이 明 太祖로 즉위하기 전에 이미 고려여인 석비(碩妃)가 있었는데 석비는 명나라 함산공주(含山公主)의 어머니가 된다.
그리고 조선의 환관들을 명나라 황실의 환관들로 삼았다. 주원장이 한반도출신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나인이라면 황실을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 주원장은 황후(고려인 한여비)뿐만 아니라 후처들도 조선여인들로 삼았다.
관리하는 환관(내시)들을 어떻게 조선인들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명나라 황실은 조선을 각별하게 환대했다.
주씨 노부부의 아들로 5살이 되던 해 고승을 따라 절에 들어갔다가 15세에 하산했으며 총명하고 민첩했다.

또 한국 민간 전설집에는 朱元璋이 중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적혀있어 더욱 신빙성을 더했다.
또 주원장의 주변에는 유독 고려인이 많았고 주원장의 심복인 주유도 고려인이어서 각별히 신임했다는 주장까지 더해져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고려당대 유명한 풍수지리가 '유현'으로부터 천하 명당이 전라남도 해남 바닷가 어딘가에 천하제일의 명당이 있음을 알아내고는
급히 찾아가 보았는데,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3년전에 자기 부모를 모신 후 지나지역의 '안휘'라는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일은 주원장의 유언에 의해 그는 극비밀리에 한반도 해남에 묻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나국 화교들이 최고로 치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묘지라고 불리는 곳인 명효능이란 곳에는 터만 성대하게 궁궐같이 지어져 있을 뿐, 묘지가 없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나라 전래의 설화뿐이 아니라, 장백전(張白傳)이란 군담소설에도 주원장이 장백(張白)의 죽은 누이의 자부(欺夫)라는 것을 현몽하는 대목이 있고,
조선의 대표적 판소리 춘향전에도 주원장이 등장한다. 사대주의와 모화사상이 뿌리내리는 조선시대에서 감히 부모국으로 섬긴 명나라의 태조가 조선의 전라도 해남에서 머슴이나 하던 상놈출신이었다고 기록하지 못했을 뿐,
호남 곳곳에서는 지나국의 황제가 된 주원장의 과거모습을 여기 저기서 나즈막하게 구전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2018-12-16 21:49:22
220.xxx.xxx.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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