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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광장
총참의 겸 육군소장 김규흥 장군 이제야 알게돼 죄송합니다,
 옥천사랑
 2018-12-10 07:48:37  |   조회: 693
첨부파일 : -
문향헌(聞香軒) 춘추민속관 터가 바로 옥천구읍의 대대손손 벼슬 명실상부한 큰 명당.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 장군, 옥천이낳은 역사 속에 숨겨진 별,(2왕비,6정승, 11판서의 후손)

명성왕후,효의왕후, 6정승 11판서 의 후손 김규흥
앞으로는 옥천의 자랑인 범재 장군을 영화화와 넓이 알려야 합니다,
이제야 알게 돼 죄송합니다,역사 속 숨은 독립운동가
의열투쟁 비용 70만 불, 누가 준비했나? 한국인 김규흥이 합작한 의열투쟁

신흥무관학교 하사관 김규흥
동제사 총 사령관 범재선생이 대동단결선언 무오독립선언 2.8 동경 선언3.1운동 임시정부수립 파리강화회담에 화려한 주인공

아버지 !! 왜 바보같이 광복투쟁하셨어요.

김규흥 장군의 시(1920년 독립신문) 편지중에서
입술과 이의 밀접한 하나

오랜세월 두고두고 뼈속깊이 사무쳐
나홀로 뗏목위에 외롭게 의지하고 거친파도 헤치고 와
이곳 몸던져 외롭고 고달픔에 그리운 고향생각 넘치네
별빛비친 나의 칼 반짝 반짝 빛나 돌아갈까 유혹속의 찰라
흔들렸던 마음 눈뜨고 깨달으니 부끄러움 그지없어 몸둘바 없어라
조국에 바친 이몸 다른생각 있으랴 이목숨 다하도록 힘쓰고 힘써 애국애족
이국땅 이곳저곳 뜻맞는 동지 찾아 호걸 들과 손에 손을 잡아 힘모아
서로 서로 뭉쳐서 모든 간난 구제하리라.

옥천 구읍 청풍김씨 고택 문향헌(聞香軒) 춘추민속관
1760년에 지어진 청풍김씨의 고택 聞香 金致信 영조(英祖) 47년(1771)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8위(38/74) 통덕랑,부(父)] 김술로(金述魯)사재감주부, [조부(祖父)] 김고(金橰)[文: 승정원 승지, ] ,[증조부(曾祖父)] 김순(金洵)[進] 돈지돈녕부사,고조부 김극형(金克亨) 공조정랑,5대조 김인백(金仁伯) 이조판서,


춘추민속관 전경 이 집이 바로 옥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범재 김규흥 장군의 생가로서 지금은 춘추민속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범재(凡齋) 김규흥(金奎興) 장군(죽향초등학교 기념비)

대한 독립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범재
얼마나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던가? 참으로 그의 업적이 그늘에 묻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고옥은 1760년(영조 36년)에 문향(聞香) 선생이 지은 250여년이 된 전통가옥으로, 처음 지은 분의 호를 따서 문향헌(聞香軒)이라 하며, 2010년 1월 옥천군에 의해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범재 김규흥 장군이 1936년 중국 천진에서 서거한 후, 애국지사들의 자손들이 대개 그러하듯 어버이의 보살핌 없이 궁핍한 가운데 집안은 고옥은 방치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고택은 두 채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건물은 우물 정자(井字)형의 문향헌(聞香軒)으로 청풍 김씨 범재 선생의 생가이고, 원래 와가 85칸과 초가 12칸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55칸만 보존되고 있다 한다.

오른쪽 건물은 우국지사 괴정(槐庭) 오상규(구한말 탁지부 국장) 선생이 거처하던 곳이다. 상량문에 1856년(철종 7년)이라는 글귀가 선명하여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향헌 뒤란으로 가니 거기 작은 지붕을 둘러 쓴 석파정(石坡井)이란 아담하고 예스런 우물이 나타난다.

金奎興 1872~1936 김규흥은 청풍김씨 23세손, 金奎植 1881~1950 김규식은 청풍김씨 23세손,1919년에는 임시정부의 파견원으로 김규식과 함께 파리 강화회의에서 한국독립운동.

'범재 김규흥의 민족운동과 독립군 양성계획'(지도교수 박걸순)에 따르면 그의 조부 김동교(金東敎)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원납전을 1만냥이나 내는 등 구한말 옥천지역 최대 거부였다.

실제 고종실록 3년(1866) 10월 1일자 기사의 원납인 명단에는 그의 조부 '동교'(東敎)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의 충남 강경에 20칸 규모의 집을 소유했었고, 현 옥천 죽향초등학교 부지는 그의 목화밭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김규흥 선생은 어려서부터 열심히 학문을 익혔다. 그러다가 큰 그릇이 되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는 고향을 떠나 상경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경성으로 상경한 그는 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데 힘을 쓰게 된다.   김규흥이 15살이 되던 해인 1886년, 그의 할아버지가 별세하시게 된다. 그리고 5년 뒤인 1891년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김규흥은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큰 뜻이 있었기 때문에 경성에 머물며 동지를 사귀는 데에 더욱 집중하였고, 집안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맡겼다.   김규흥은 도일하여 일본의 선진 문물들을 보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게 되어 자신이 태어난 곳인 충북 옥천에 죽향초등학교 전신인 진명(창명)학교를 세웠다.   1906년, 김규흥은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면서 나라를 개화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자강회에 속한 장지연, 박은식, 양기탁을 비롯한 이들과 자연스럽게 교우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고종의 밀사로 중국에 가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일경의 감시와 함께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자, 이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김규흥 선생은 1908년, 중국 관동으로 단신 망명하여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본명을 김복으로 변경하였다. 중국에서 그는 자신의 인맥들을 넓혀가며 중국 내에서 항일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사재를 털어 가면서 망명초기의 독립지사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에 모일 수 있었는데, 이는 독립운동의 방향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김규흥은 1911년 10월, 한국인 최초로 공화제를 주창한 신해혁명에 참여하여 혁명정부의 도독부총잠의 겸 육군소장을 역임함으로써 핵심인물 6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 되었다.   또한 김규흥은 독립운동 총 본부와도 같은 ‘동제사’라는 비밀 단체에서 독립 운동지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동제사는 1912년 7월 건립되었으며, ‘동포들이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는 뜻을 지닌 단체였다.

  1913년 김규흥은 동제사를 통해 홍콩에서 최초의 한중합작 잡지인『향강』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지역 내에 박달학원을 건립하여 많은 독립지사들을 일구어 냈다. 또한 동제사의 인맥을 통해서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주요 독립지사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게 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 김규흥은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김규흥은 여러 독립선언서의 발표를 주관하기도 하였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을 배후에서 후원하였다. 1919년 11월에 의열단이 창립되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총리 대리직을 할 것을 교섭하였으나 김규흥은 이를 거절하였다.

  3·1운동이 있은 후,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되었다. 김규흥도 여기에 참가하였는데, 그는 김규식을 돕기 위해 파리로 파견되었다. 그는 김규식과 함께 대한민국의 독립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힘을 쏟았다. 하지만 열강들의 매몰찬 외면으로 인해 그들은 원하던 민족 자결주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 후, 김규흥 선생은 북경에서 박용만과 무장투쟁노선에 따른 독립 운동을 펼치게 된다.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은 ‘대조선국민국’을 조직하려 했으나 자금 문제로 인해 조직을 구성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김규흥은 박용만과 함께 각종 사업을 벌여 그 이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전환하는 '둔전제적 독립운동'을 구상, 이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했다.

1922년, 박용만과 ‘흥화실업은행’을 설립했고, 당시 개점식에는 김구 선생도 참석했다. 흥화실업은행은 금융기관을 표방하였을 뿐, 사실은 대일 무장투쟁을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김규흥 선생은 조선, 중국, 러시아와의 3국 합작을 통해 시베리아 지역을 차용하자고 주장했고 나중에는 내몽골도 이에 포함시키려 했다. 그리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 북경과 만주 지역의 토지를 사고, 동지들을 모아 경작하게 하면서 각 군사단체들을 하나로 모으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1923년, 주식금을 모으고자 했던 계획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목표액 10만엔의 1/10밖에 모금하지 못하는 등 가시밭길 시작이었다. 김규흥 선생은 이때 고향 옥천에 손을 내밀어, 죽향초등학교 앞에 남은 옥답인 전답을 팔아 중국으로 송금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김규홍 선생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김규흥 선생은 손문, 진기미, 진형명 등 중국의 혁명세력들과 박은식, 신규식, 여운형 등 한국의 항일독립지사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중국 내에서 항일전선을 구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애석하게도 범재 김규흥 선생은 1936년 8월 16일, 한인 애국단이 조직된 지 5년 만에  천진에서 이질로 작고하게 된다. 그의 유해는 화장된 후 국내로 운구돼 현재 대전 현충원에 영면해 있다.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범재 김규흥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평생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여 한국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KBS 1TV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2015년 8월 20일 밤 11시 40분에 ‘발굴 추적!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자, 김규흥’이란 제목으로 범재 김규흥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전 과정을 특집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이제는 한국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누구를 위한 독립운동인가? - 나는 청풍김문과는 무관하지만 옥천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울뿐이다.
독립지사 가문의 고택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돌아든다. 옥천읍 문정리. 얼마 가지 않아 예사롭지 않은 돌담을 두텁게 두른 한옥채가 반긴다. 넓은 집터는 한옥 고택 두 채와 300여 년 된 회화나무, 담장을 따라 시립한 문인석, 곳곳의 바닥돌로 묵직하다. 1760년(영조 36년)에 세워진 안채 문향헌(聞香軒)과 1856년(철종 7년)에 세워진 바깥채 괴정헌(槐庭軒)이 함께 자리 잡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25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문향헌은 청풍김씨 18대손 문향(聞香) 김치신(金致信) 공에 의해 건립됐는데, 당시에는 와가 85칸과 초가 12칸으로 100칸 대옥이었다.

대원군의 경복궁 복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렴주구가 극심해지자 가세가 크게 기울었는데, 1872년 23대손 애국지사 범재(凡齋) 김규흥(金奎興) 공이 태어났다.한일늑약으로 나라 잃은 백성이 된 공은 독립운동에 투신하다가 유명한 고종의 비자금에 얽힌 조칙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고 난 뒤 1908년 초 중국 광동으로 망명한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3ㆍ1운동, 의열단 투쟁, 은행 설립, 언론사 설립, 둔전제 실행 등 독립운동의 획을 긋는 주요한 투쟁의 배후 역할을 하면서도 그는 일경의 체포되지 않았다. 문향헌은 김 공이 중국으로 망명한 후 살림이 어렵게 되면서, 지금은 이곳을 춘추민속관이라 이름을 붙이고 정태희 관장이 관리하고 있다.

문향헌은 비가 새고,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처마 밑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있고, 비가 새는 등 보수가 절실하다. 옥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고, 한옥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보수 재원을 마련할 길은 막막하다. “문화재급 한옥 고택을 유지하는 일은 고행입니다. 2년 전에는 군에 신청한 보수 예산 4천여 만 원 전액이 의회서 삭감됐어요. 지금껏 돈이 생기는 대로 털어넣고 있지만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고택 몇 채를 ‘함마’로 뭉갰어요. 지자체도 정부도 나 몰라라죠. 피눈물을 삼킵니다.” 독립운동과 독립지사에 대한 냉대와 푸대접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2018-12-10 07: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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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민 2018-12-11 23:29:29 211.xxx.xxx.234
광저우 독립운동가 33인… 역사마저 그들을 묻었다
입력 : 2018-08-14 17:40 ㅣ 수정 : 2018-08-15 11:31
역사연구가 강정애씨 10년간 발로 뛰며 미기록 독립운동가 발굴하다
독립운동사서 지워진 청년들
강씨가 발굴한 33명의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는 내년 초쯤 출판사 수류산방이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은 “자료가 워낙 방대한 데다 교차 확인을 거치느라 3년 가까이 걸렸다”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상하이, 미국 등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 외에 그동안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구축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애국애 2018-12-11 22:58:27 211.xxx.xxx.234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갈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우물가에 저녁 종이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애국민 2018-12-11 21:51:15 211.xxx.xxx.234
갑옷은 장성의 달빛아래 무겁고보검은 말릉의 가을 맞아 차갑네.동방에 태어나 대지에서 울부짖네이역만리 찬바람 불어치는데이내 걱정 하늘에 넘치네품은 뜻 동녘땅 위함이라 일송정 소나무 한 그루
한겨울 눈보라 세차게 불어와도
혜란강 맑은 물에 그 아픔 띄우나
들풀들 하늘하늘 망향노래 부르니
님 마음 푸르러 내 마음 물둘어
선구자의 기세는 구름 위로 솟구치네

애국민 2018-12-11 20:23:56 211.xxx.xxx.234
대한독립선언서,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 표출
서명자 3분의 2는 대종교와 관련된 분들”

3.1운동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 보다 먼저 만주지역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는 단군민족주의를 기저로 민족종교 대종교가 주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발표됐다. 발표시점과 서명자들에 대한 조명도 시도됐다.

먼저, 대한독립선언서의 발표일자를 단기연호로 적고 있는 점을 들었다. 선언서 말미에 ‘건국기원(建國紀元) 4252년 2월’이라 표기된 것. 또한 “반만년‘, ’사천년 조종의 영휘‘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고 예시했다.
“단기연호는 단군민족주의가 정립하여 보급한 대표적인 전통”이라며 “단군을 동국사의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정착하면서 지식인들은 특정의 역사적 사건이나 당대의 시기를 단군이 건국한지 몇 년 째인가를 자주 따져 묻곤 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국인 2018-12-11 09:48:08 121.xxx.xxx.150
세월아 네가 바로 진리로구나 잘난 자나 못난 자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큰 자나 작은 자나    종교를 가진 자나   종교가 없는 자나   진리를 안다는 자나    진리를 모른다는 자나    세월 앞에서는 그 사람이 그 사람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가는세월 바람타고 흘러가는 한조각 구름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양 꿈인양 구중궁궐 99칸 처마끝에 한맺힌 매듭 수많은 사연담아 가는곳이 어디인가 세월과 인심의 부침으로 허물어지고 퇴락하는 물결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부질없는 인생무상.

애국민 2018-12-11 09:43:23 121.xxx.xxx.150
3.1 운동 총괄 기획자 김규홍 선생 
개천절 뿌리의,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의 구국운동으로 가정가족을 뒤로한채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하여한몸받친 단군국조 정신의 대종교인들이 주축인 독립정신이다,
'항일 독립운동의 총본산' 대종교는 항일전쟁을 벌려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사에 빛나는 청산리 전투를 이끈 김좌진·이범석 장군은 물론,
상당수 참전군인이 대종교 신도였다,
대동사상(大同思想)을 정치사상으로 하며, 국혼(國魂)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관과 대종교의 국가적 신앙을 공통으로 가졌던 점으로 보아 동제사의 기본이념과
독립운동방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국애족 2018-12-11 00:02:36 121.xxx.xxx.150
옥천죽향초등학교의 실질적인 설립자
"범재 선생 생가복원 서명운동 전개하자"

김좌진 장군의생가, 이범석 장군의 생가에 이어
독립운동에 600억 쏟아부은 `우당이회영 6형제’ 생가복원(신흥 무관학교와 이회영)

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된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충절의땅 2018-12-10 23:02:31 121.xxx.xxx.150
아버지!! 왜? 바보같이 독립운동 하셨어요??
대물림되는 가난에 피맺힌 절규를 무엇으로 대답 하실까요?
가장 바보스러운 바보들의 총 사령관 범재 김규흥 선생!! 중국군 총참의 겸 육군소장
재갈량이 환생한분이라고 혁명동지들이 극찬한선생!! 절대비밀 독립운동사의 총 사령관!!
피눈물나는 가시밭길 민족혼을 지키며 오히려 재산과 권력을 민족의 제단앞에 바치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위대한모든 투쟁은 80년 후를 예견한 위대한 선택 이였습니다.
80 여년 후에 부활을 예견한 듯 결정적인증거를 많이 남겼습니다.
전 국민이 기념하는 3월1일의 위대한 함성의주인공이 감격의 함성과 함께 후세 대대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려면부끄러움 없는 위대한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충혼정신 2018-12-10 21:50:07 121.xxx.xxx.150
예술의 전당에서 "신흥무관학교 뮤지컬 ...우리들의 청춘, 이 세상 끝까지 간다
!”항일 독립 전쟁의 선봉에 섰던 ‘신흥무관학교’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담아내다!
신흥 무관학교와 이회영. 지청천의 이야기에 청산리전투. 봉오동 전투가 곁들여져 있고 밀정의 삶에 대한 고뇌 아픔..우정 꽃다운 나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아스러져가는 조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친 푸르른 청춘들의 이야기!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떠나 고귀한 희생을 이어가던 그들의 정신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계속 이어진다.

청풍명월 2018-12-10 18:36:09 121.xxx.xxx.150
김규흥 장군의 두고온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도 국가독립을 위한 비장함이 가슴 뭉클하다.

"입술과 이의 밀접한 하나
오랜세월 두고두고 뼈속깊이 사무쳐
나홀로 뗏목위에 외롭게 의지하고 거친파도 헤치고 와
이곳 몸던져 외롭고 고달픔에 고향생각 넘치네
별빛비친 나의 칼 반짝 반짝 빛나 돌아갈까 유혹속 찰라
흔들렸던 마음 눈뜨고 깨달으니 부끄러움 그지없어 몸둘바 없어라
조국에 바친 이몸 다른생각 있으랴 이목숨 다하도록 힘쓰고 힘써 애국애족
이국땅 이곳저곳 뜻맞는 동지 찾아 호걸 들과 손에 손을 잡아 힘모아
서로 뭉쳐서 모든 간난 구제하리라. "

충절의 길 2018-12-10 18:16:54 121.xxx.xxx.150
'신흥무관학교' 뮤지컬 노랫말처럼 우린 죽어도 죽지 않고 승리하였으며, 해방을 맞이한다.그리고 오늘이 왔다.정말 감동적이고 애국심이 불끈 솟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빼앗긴 강토를 물려줄순 없다.
오직 앞으로 오직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용진 또 용진
침략자를 몰아내고 다시서는 그날까지
용진 또 용진 용진 또 용진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끝까지 싸운다 끝까지 싸운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빼앗긴 강토를 물려줄순 없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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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1 RE 아이러니 하죠HOT 권선형 - 2019-01-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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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7 옥천군 공무원 여러분에게 바라는 글 입니다 (1)HOT 정용규 - 2019-01-02 1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