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南部만 都市가 하나도(청주충주제천시) 없다
 삼군사랑
 2018-12-05 18:35:10  |   조회: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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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시승격 불가능하냐
도농통합 2016-08-28 16:52:15
1.인구 10만명 넘으면 시승격 가능2.읍이 시로 승격한후 시와 군이 도농통합을함

옥천시승격안하나요?
2014.01.05.

옥천군은 언제시승격 하나요?
옥천시승격...

2013.09.15.
옥천이 3~5년사이에 시승격을 할수있나요? 인구는언제 증가할까요???

지난해 충북 옥천의 외지 관광객 방문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막지리에서 촬영된 MBC아빠, 어디가?

옥천지역 관광활성화 방안과 대책이 다양하겠으나 유람선 띄우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서?)않되나
방송에도 나왔던 막지리 건너는 유람선은 될것 아닌가
관광개발 차원에서 막지리와 답양리를 연계 볼거리 개발했으면 어떨런지

어느세월 언제쯤 막지리로 건너가는 육교가 생길거나???
막지리에서 현리까지 둘레길은 불가능한것인가(장계리 건너편은 바위들로 힘들겠지만)

대한민국의 고향 옥천
머리와 가슴속의 영원한 고향,옥천의 시골길은 아직도 조용하고 깨끗한 공기와 경치가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내륙중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옥천! 금강과 대청호를 끼고있는 아름다운 고장.

옥천군서 KBS1 TV쇼 진품명품 촬영 소장품 재발견

충북옥천 - 막지리 이번주 MBC아빠, 어디가?
'육지 속 섬' 옥천 막지리 막지봉 512미터
대청호 물빛 수면을 힘차게 차오른 400~500여m 산릉은 마치 천연의 요새처럼 우뚝하다. 막지리에서 막지봉을 오른 뒤 다시 되짚어 내려오거나 장고개로 하산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거의 밑바닥부터 시작되는 오름길이 만만치 않지만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있고 전망대는 한껏 물오른 신록의 향연과 함께 가슴 가득 청량감을 선사한다.
   
  지난해 도시에서 암투병 중인 사람이 들어왔어요. 그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막지봉을 오르내렸답니다. 이후, 그 환자는 많이 회복되었다고. 어쩌면 치유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지쳐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일지도...
    막지리는 대청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을 피해 새로 생긴 마을. 지금은 여기에 20여 호 정도만 남아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오지가 된 마을의 한낮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막지리의 원래 이름은 맥계. 보리밭이 많다 해서 우암 송시열이 지은 이름이다. 시간이 흘러서 '맥'이 '막'으로 바뀌었듯이 이제 이곳에서 보리밭은 찾아볼 수 없다.

'아빠 어디가2'의 윤후가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9일 오후 방송된 MBC '일밤-아빠 어디가 시즌2'(이하 '아빠 어디가2')에서 새로운 가족들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났다. 윤후는 이날 안정환의 아들 안리환, 김성주의 아들 김민율과 함께 저녁 재료 구하기 미션인 물물교환에 나섰다.

'아빠 어디가2'에서 맏형이 된 윤후는 이날 두 동생을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에 대한 거정을 안고 옆 마을로 향했다. 윤후는 이날 배에서부터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며 의젓한 면모를 보였다.

윤후의 맏형 노릇은 물물교환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윤후는 물물교환을 하기 위한 집에 예의 바르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더 많은 재료를 가져가기 위한 나름의 전략도 있었다. 윤후는 콩 한 자루를 통째로 놓고 가려는 리환을 더 많은 재료를 바꾸려면 이걸 다 놓고 가면 안 된다며 설득했다.

윤후는 음식을 조건 없이 주려는 할머니에게 죄송함을 느끼고 계란을 두고 나오는 등 한결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였다. 윤후는 함께 짐을 들어야 할 때는 동생들에게 일을 도울 것을 말하는 등 단호한 모습도 선보였다.

돌아가는 배를 타야하는 순간에도 윤후는 동생들을 리드했다. 타고 온 배의 선장님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불안해하는 동생들에게 윤후는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용기를 북돋았다. 동생들과 있을 때는 씩씩했던 윤후는 아빠 윤민수를 만나자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 웃음을 자아냈다.


99칸 한옥 '삼(三)정승과 대지주의 집'
삼정승의 이름을 이제 밝혀야 이해가 되며 신뢰가 간다,

김씨 송씨 민씨 삼성은 옥천및 대전지역에서 뿌리깊은 성씨들.

옥천 육영수 생가 건축연대 - 삼정승 자료
2013.04.10.

김정승 김녕김씨 1600년대 교동에서 살다가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골로 이사(김상기의 할아버지로 추정? )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 김상기(金相基 字 汝進 號 度齋) 효자비, 김녕김씨 재실,
고종43년(1904년) 孝子嘉善大夫同之中樞府事龍 衛副護軍金相基之閭(1566년-1865년 벼슬)

김필환(金弼煥) 字사장(士章) 1826년생 沃川人
철종(哲宗) 3년(18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부(父) :김상기(金相基) 제(弟) :김경환(金景煥) 제(弟) :김석환(金奭煥)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 마을 구릉지 혈 끊기 쇠말뚝 길이 37cm 발견

송정승 송근수 1894년 전후 교동에서 살다가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골(保晩齋)로 이사
송근수(宋近洙( 1575~1635)의 율시기문(律蒔記文)이 새겨져 걸려있다.
옥주사마소에 전해지는 고종(高宗) 30년(1893) 2월에 중수한 사실을 송근수(宋近洙)의 중수기 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송근수 : 조선말엽 대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尤庵의 8세 직손으로 묘소는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에 있다고 전한다.

민대감 민영기(閔 泳綺) (1858년(철종 9) 8월 1일-1927년 1월 6일) 1913년 3월 7일 민영기의 소유, 1918년 8월 13일 능월리 육종관 매입

옥천 지역의 명가로서 1600년대부터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 삼정승이 살았던 곳으로, 이가옥은 1894년경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상류 계급의 건축 구조를 대표할수 있는 가옥이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땅을 밟지 않으면 길을 오갈 수 없었다. 궁궐같은 집안에서 일하는 머슴들만 해도 100여 명은 되었고, 소작농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김정승은 옥천의 내로라하는 사대부였다. 조정을 드나들 정도의 벼슬을 얻었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이 가득했다.

그래서 99칸의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 집 주인이 머무는 안채를 중심으로 위채, 아래채, 사랑채, 정자, 연못, 사당 등을 지었다. 한옥에서 한 칸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 한다. 김정승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탐관오리로 낙인찍히면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송정승이 99칸의 주인이 되었다.

송정승은 처음부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자수성가라고 해야 할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공부해서 벼슬을 얻었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그렇지만 그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식들이 이 모든 권력과 재산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심은 흉흉했다.

터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명당이라는 이름만으로 권력과 재산을 탐하면서 가세가 기울고 터의 기운까지 빼앗기고 있다고 숙덕였다.다시 이 집 주인은 민정승으로 바뀌었다.

전에 살던 두 정승과 달리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년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을 위해 잔치를 열기도 했다. 후손들도 민정승의 뜻을 기려 결코 가볍게 행동하지 않았으며 옥답을 지키는데 힘썼다.

세월이 흘러 1918년 어느 날, 인근 능월리의 대지주 육종관 씨가 교동집을 사들였다. 민정승 자손의 가게가 기울기 시작하고 육 씨네가 승승장구 할 때였다.

육 여사가 태어난 진짜 생가 2011.07.25

옥천군 청성면 마장리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은 이곳에서 옥천 갑부로 불렸다.

두릉리가 정치인 박근혜 모친 육 여사가 태어난 진짜 생가 *
길가에 능월리1구(두릉리) 마을 이정표인 비석 글씨가 눈에 띤다. 두릉댕이(옛이름 청산현 서면) 평화롭고 한가롭게 자리잡은 두릉 마을, 마을에서는 둔덕산 이라고도 부르며, 그곳이 청성면 두릉리 정치인 박근혜 모친 고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양택지로, 마을이  육씨의 세거로  마장리 마을 육인수(국회의원5선)가 태어났으며,

육여사의 부친이였던 육종관은 1893년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에서 대지주인 육용필의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큰형 육종윤은 승정원 부승지를 지낸뒤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하였으며, 둘째형 유종면은 법률 공부를하여 판검사를 지낸뒤 변호사가 되었다. 셋째형은 일찍 죽었고, 누이는 송씨가문으로 시집갔으며, 막내 육종관은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만석꾼 대주주가 된다.                                 

 풍수지리는 자연과학이다(28) 출처:특급뉴스
2007.08.12 03:50
이원행의풍수..故육영수여사 생가지 답사
지난 6월 29일 사단법인 이산전통풍수지리연구회(理山轉統風水地理硏究會) 하계연찬회(夏季硏鑽會)겸 답산(踏山)일정으로 영부인(令夫人)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지를 찾았다.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 아랫마을 마장리 옥천육씨(沃川陸氏) 중시조 묘소 공주목사 제주목사 그 외 묘소와 고 육인수(전 국회의원) 생가지 등을 답산(踏山) 했다.

이어 영부인(令夫人) 육영수 생가지 능월리(陵月里)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안개가 많아서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풍수사로서 주변의 사(砂)를 세밀히 관찰하기는 무리였다. 현무(玄武)..뒷산은 관함봉(관모봉)이며 산모양이 관(冠)처럼 생겼다. 강력한 생기가 내려오는 대지(大地)에 안산(案山)은 문수산 산모양이 둥근 모양을 하여 일월(日月)과 같고 태양(太陽)이 떠오르는 모양과 같으니 큰 인물이 날 터임을 알 수 있다.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청정(淸淨) 암반수(巖盤水)로 양식한 숭어회와 중식을 오후 2시경 늦게 즐기는 동안 뇌성벽력(雷聲霹靂)과 세찬 소낙비가 삽시간에 많이 내렸다. 연찬회(硏鑽會)는 여러 회원이 진지한 자세로 풍수지리연구회장 남궁 승 박사 특강, 이사(理事) 이 희 선생, 이사(理事) 필자(筆者), 3인의 발표(發表)와 연구발전에 관련된 담소로 하계연찬회는 잘 마감됐다.
  
김정승 김녕김씨 1600년대 교동에서 살다가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골로 이사

김문기(金文起)는 조선시대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 이에 3족을 멸하는 위기를 당했다,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 선생 선산 추정지 옥천(沃川)에서 발견
고려문하 시랑 김현(金峴). 조선조 호조판서 김순(金順 :묘-영동군 심천면), 공조 판서 김문기.
김현(金峴)의 손자인 김순(金順)이 충북 옥천(沃川)의 산수(山水)에 반해 그곳에 자리잡은 뒤, 일부 자손들이 그곳에서 세거하였다,

金文起의 아버지 金觀(관) 一名(일명) 寬(관)
 配(배) : 貞敬夫人(정경부인) 管城(관성) 陸氏(육씨)
墓(묘) 永同郡(영동군) 深川面(심천면) 明川里(명천리) 텃골 卯左(묘좌)

金文起의 아들 金玄錫, 아들 효자 김충주(金忠柱), 손자 김경남(金景南), 증손자 김약전(金約前)

金忠立(상주관노로정속) 의 아들 金明之 옥천에서 김천시 구성면 상거리로 이주.
김명지(金明之) : 은암공의 조부모이신 김명지공의 묘는 단종사화 이후 300년동안 실전되어 오다가 옥천 향토사학자 이수암 선생님의 도움으로 충북 영동 오정저수지 관리사무소 머리 위쪽 산의 절벽 근처에서 가족묘 6기를 포함하여 총 11기의 실전된 묘를 발견,
단종사화(계유정난1453년)때 옥천으로 金明之 분묘 : 옥천 죽항촌 후곡
김명지의 아들 김영년(金永年1546, 1 ~ 1597)의병장, 옥천에서 태어났다.
김명지의 아들 金淑蓮
2018-12-05 18:35:10
121.xxx.xxx.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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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사랑 2018-12-07 00:11:37 121.xxx.xxx.150
교동 삼정승
宋政丞 閔政丞 金政丞
1.송근수(宋近洙(1575~1635) 1894년전후 교동에서 살다가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골(保晩齋)...1600년대 인물로 1894년전후 는 착오.

2,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 김상기(金相基: 1700년대 인물, 字 汝進 號 度齋) 효자비, 김녕김씨 재실,고종43년(1904년) 孝子嘉善大夫同之中樞府事龍 衛副護軍金相基之閭 세움,
김상기의 아들 김필환(金弼煥) 字사장(士章) 1826년생 沃川人

3.민영기(閔泳綺)(1858~1927) 1894년전후
김정승 김녕김씨 1600년대(宋政丞時代) 교동에서 살다가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골로 이사
* 1600년대는 宋政丞時代며, 1894년전후는 宋政丞時代로 바로잡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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